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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라 Oct 29. 2024

매주 스타벅스에 가서

[아침의 파스타, 숏파스타]

소싯적,

소설을 써 보겠다며

주말 아침마다

집 근처,

스타벅스를 찾은 적이 있다.


딱히 스타벅스여야 할 이유는 없었다. 7시 반부터 문 여는 데가 거기밖에 없었고, 무엇보다도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으니까. 늘 샌드위치나 스콘 등 먹다가 어느 날인가, 밀박스라는 새로운 메뉴가 나왔다. 소량의 파스타와 샐러드를 담은 메뉴로, 맛도 있지만 든든하기도 해 꽤 마음에 들었다. 안타깝게도 요즘은 팔지 않는다. 인기가 없지는 않았을 텐데. 아마 카페 안, 음식 냄새가 너무 많이 났기 때문 아니었을까, 싶다. 당시에 스타벅스에 가면 커피향보다 토마토와 허브, 베이컨 냄새가 폴폴 풍겼으니까.


아무튼 나는 그 밀박스 덕분에 숏파스타의 맛을 알아버렸다. 사실 그전까지만 해도 파스타라면 역시 면, 이라는 인식이 강해서 숏 파스타를 선뜻 시도해 본 적조차 없었다. 그러나 이 숏파스타라는 게 생각보다 만들기 간단해 아침 메뉴로 제격이었다. 일단 계량이  쉬웠다. 삶기 전, 담을 접시에 담아 보면 되니까. 또 스파게티의 경우 널찍하거나, 깊은 냄비가 필요한 반면에 지름이 한 뼘 정도 되는 작은 냄비 하나면 충분히 파스타를 만들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삶는 물을 적게 쓰니까 뽀얗고 쫀득한 면수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면수를 더 한 자박한 파스타를 특히나 좋아하기 때문에 이 같은 발견이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집에 라면이 똑 떨어지는 한이 있어도 펜네나 푸실리, 귀여운 나비 모양의 파르팔레를 떨어지는 날 없도록 사두게 되었다.


스타벅스에서 밀박스를 먹는 거만큼, 좋아했던 게 한 가지 더 있었다. 바로 옆 테이블 대화 엿듣기. 개방된 공간에서 나누는 대화니 엿듣는다고 보기는 좀 어렵긴 한데, 그래도 이렇게 표현한 이유는 옆자리에서 좀 더 안심하고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도록, 아무 음악도 나오지 않은 이어폰 낀 채, 노래를 듣는 척하는 등 필요 이상으로 치밀한 준비를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적어 놓고 보니까 내 스스로가 좀 징그럽게 느껴지는데 이제와 생각해 보니 어지간한 게 소설이 안 써졌나 보다, 싶다.


이런저런 별에 별 이야기를 다 들었다.

나와 상관없는 얘기들.

그러나 허락만 해주면 언제든 껴들어 쉽게 말 얹을 수 있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  


옆에 앉은 사람이 달라질 때마다 다른 에피소드가 펼쳐졌으니, 스타 벅스에 앉아 있다 나오면 마치 옴니버스 영화 한 편을 보고 나온 거 같은 기분이 다 들었다.


카드값 독촉 전화에 당장 돈을 낼 수 없는 개인사를 참 차분하고도 디테일하게 설명하던 분,

애인의 통화 내역을 검열하면서 의심이 가는 몇 사람에게는 기어이 전화해 보던 분.

(결국에 애인의 친적에까지 전화해 추궁할 때는 내가 다 숨이 막혔다)

어느 회사의 선임과 젊은 사원의 짧은 대화도 생각이 난다. 4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우리 회사는 대표에 대한 존경심 없이는 일할 수 없는 곳이라 훈수를 두자, 마주한 청년이 큰 소리로 껄껄껄, 웃던 거. 나중에 그 회사 대표가 안 좋은 일로 뉴스에 보도 됐을 때 나는 잊고 있던 그 대화가 떠올랐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그 청년, 아직 그 회사 잘 다니고 있을지. 


말고도 더 많은 이야기들이 머릿속에 뒤죽박죽 섞여 있다. 온갖 비속어가 난무해 옮기기 좀 저어 되지만 너무 웃겨서 참느라 죽을 뻔했던 에피소드도, 차마 다른 이에게 들려주기 어려운 슬픈 에피소드도 있다. 그러나 가장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건 의외로 흥미를 돋울만한 요소가 전혀 없는, 어느 중년의 여성과 아들 간의 아주 보통의 대화다.


여느 때처럼 이른 아침. 노트북을 사용할 수 있는 바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곧 중년의 여성 한 분이 와 내 건너편에 앉았다. 그녀는 음료를 주문한 후 가방 안에서 책과 노트, 필통 등을 주섬주섬 꺼내 늘어놓았다. 그런 후 고개 한 번 들지 않고서 밑줄을 쳐가며 무언가 외듯이 중얼거렸다. 가만 들어보니 일본어 같았다. 잠시 후 그녀의 아들로 보이는 남학생 하나가 그녀의 옆자리로 와 앉았다. 아들은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 것인지, 이런저런 얘기를 조잘조잘 늘어놨으나 엄마는 적당히 맞장구만 쳐 줄 뿐, 마음은 일본어 책에 가 있는 듯했다. 듣는 둥 마는 동하는 엄마의 태도가 퍽 서운했는지 아들은 빈정대는 말투로 말했다.


- 겨우 3박 4일 다녀오면서 뭔 일본어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해?

그녀는 잠시 뜸 들이더니 이렇게 말했다.

곧 이렇게 말했다.

- 너 친구 만나러 간다고 하지 않았니?

아들은 머쓱하게 웃더니 간다, 가, 그러며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다.

어떤 대답을 내놓을까, 퍽 기대했던 내게는 다소 김 빠지는 말이긴 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그 대수롭지 않은 대화가 내 뇌리에 콕 박혀 버렸다. 여태 들어온 무수한 모자간 대화와 사뭇 달라서 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 짧은 여행을 위해서 일본어 책을 사다가 회화 연습을 하며 몰두하는 그 태도에 감동받았던 것 아니었을까, 싶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오롯이 나만의 시간 속 단단히 서 있는 거 같았던 그녀. 내 앞에 놓인 시간을 정성스럽게 가꾸며 살아간다는 것은 저런 걸 테지,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이를 낳고 난 후 내 삶에 내가 없다는, 그 흔하디 흔한 좌절감 속에서 허우적댈 때마다 종종 내 마음속에서 불쑥 그녀가 나타나고는 했다. 내 시간을 만들자. 별 거 안 해도 돼. 아니, 아무것도 안 해도 돼. 그저 누구도, 무엇도, 방해할 수 없는 나의 시간을 가져야만 해. 혼자만의 시간은 오롯이 나를 만나는 시간. 나를 만 않고서 어떻게 나를 알고, 나와 잘 지낼 수 있고, 나를, 내 삶을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람은 누구보다도 나와 잘 지내야 한다는 사실을, 그녀로부터 어렴풋, 배웠던 거 같다.


소설 쓰는 일을 단념한 후 프랜차이즈 카페 또한 자연스럽게 멀어져 갔다. 소설을 쓰고자 카페에 가서 파스타 맛을 음미하는데 더 열중하고,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이야기, 엿듣는 게 쓰는 거보다 더 좋은 나 같은 사람이 소설이 잘 써질 리가 없다.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지. 그렇게 소설은 접었지만은, 그래도 그 카페에서 그러모은 책갈피 같은 참 많고 많은 에피소드들, 나에게 꼭 필요한 순간, 그렇게 내 마음 위로 팔랑, 내려앉는다.



숏파스타 간단 레시피 

① 물에다 소금 넣고 숏 파스타를 삶는다.
② 팬에다 소스를 끓이다 면 넣고 버무린다.

tip

❶ 담아 먹을 접시에 숏 파스타 넣어 본 후 삶으면 정확한 계량이 가능하다.
❷ 숏 파스타는 삶기 전 물에 담가 놓으면 익히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❸ 시중에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숏 파스타 3가지 추천하자면 먼저 푸실리다. 굴곡이 많아 간이 잘 벤다. 크림 소스 파스타의 경우 펜네를 적합. 구멍 안으로 소스가 들어가 꾸덕한 식감을 자랑한다. 나비 모양의 파르펠레는 샐러드 파스타와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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