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두건포도비건스콘
밀가루를 줄이고자 한 이후로 더 이상 빵을 만들지 않지만 한 때는 베이킹에 미쳐 있었다. 돌이켜보면 똑같은 재료로 똑같은 시간 들여 똑같은 과정을 거치는데도 늘 미묘하게 결과물에 차이가 났던 게, 베이킹의 빠져나오기 힘든 결정적 매력 아니었을까, 싶다.
다행히 왜 그런 차이가 일어나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기는 했다. (마지막까지 몰랐다면 도전은 계속되었을지도)
좀 뻔하긴 하지만 빵의 결과는 내 태도에 달려 있었다. 얼마나 엄밀히 계량하는지, 반죽을 충분히 정성스럽게 가다듬었는지, 발효할 때 얼마나 자주 들여다보는지 등. 사소하게 여겨지는 작은 일들을 어떻게 대하는 가에 따라 달랐던 것이다.
그러나 예외적인 빵이 있었으니 바로, 스콘이다.
스콘은 대충 만들어야만 했다.
그래야 완벽해졌다.
먼저 온도부터. 보통 빵 만들 때 이스트 발효 때문에 재료의 온도를 너무 차갑지도, 또 너무 뜨겁지도 않도록 온도에 신경 써야 하는데 스콘에 들어가는 재료는 무조건 차가워야 했다. 버터며 우유 등 무식하게 차갑기만 하면 오케이. 반죽도 마찬가지였다. 글루텐이 잘 형성되도록 충분히 치대야 하는 게 보통인 것과 달리 스콘은 날가루가 안 보일 정도로만 대충, 최대한 대충 섞어야 했다. 모양을 빚을 때도 완성도에 집착해 너무 오래 만지작 거리면 도리어 망했다. 설렁설렁 모양 잡아 빨리 냉장실에다 넣어 휴지 해야만 했다.
알고 보니 다 이유가 있었다. 스콘의 핵심, 차가운 버터가 만드는 과정 중 녹으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스콘을 만들 때에는 반드시 버터가 오븐 안에서 서서히 녹아야 한다고 한다. 그래야 녹은 자리에 수분이 증발하면서 겹겹의 바삭한 층이 형성된다고. 스콘의 겉바속촉 비밀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대충해도 되는 일, 아니 대충 해야 더 좋은 일이라는 게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단박에 생각나는 게 하나도 없다. 그러나 스콘은 다르다. 정성을 다 해 대충해야만 한다. 그래서일까. 기분이 안 좋거나 세상 만사 다 귀찮을 때 스콘을 만들고 싶어진다. 하는 둥 마는 둥 반죽 조물거리다 오븐 안에 넣는 것만으로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스콘이 선물처럼 퐁, 튀어나오니까.
호두가 건포도가 들어간 비건 스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