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이전의 당신을 잃지 마세요.
안녕하세요. 봄이 오는 길목인데, 아직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네요. 겨울보다는 분명 따뜻해졌는데,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바람은 여전히 쌀쌀해서 괜히 옷깃을 여미게 됩니다. 당신께서 편지를 써주셨을 때는 아마 겨울의 어느 날이었겠죠. 차가운 바람이 코끝을 시리게 하는 어느 날 당신은 육아에 대한 고민을 꾹꾹 눌러 담아 편지를 보내주셨어요. 계절이 바뀌어버릴 만큼 답장이 늦어졌습니다. 많이 기다리셨을 텐데, 정말 미안해요.
19개월 둥이들을 키우고 계신다고요. 한 명만으로도 온 세상이 달라지는데, 당신의 그 두 배의 행복 속에 계시겠네요. 저는 지금 중학교 1학년과 2학녀느 연년생 남매를 키우고 있어요. 이제는 예전보다 제 시간이 많이 생겨서 감사하면서도, 그때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아기 냄새를 다시는 맡을 수 없다는 생각에 가끔 마음 한편이 아릿해지곤 합니다.
당신의 편지를 읽으면서 조금 먼저 아이를 키운 사람으로 어떤 이야기를 드리면 좋을 지 오래 생각했어요. 그때의 저도 당신처럼 고민이 참 많았거든요. 이렇게 키워라, 저렇게 키워라 하는 말들 사이에서 어떤 방법이 우리 아이에게 맞는지, 아이도 나도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어요. 육아서를 여러 구너 읽고, 오은영 박사님이 나오는 TV 프로그램을 챙겨보고, 육아 강의도 들으러 다니며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잘 키워야 한다'는 마음이 조금 지나쳤던 것 같아요. 관심을 갖고 공부하는 것 자체는 좋은데, 거기에 욕심이 얹히면서 아이들에게도, 남편에게도 자꾸 다그치고 실망했던 것 같아요. '부모가 바르면 아이들도 바르게 큰다'는 어른들 말씀을 흘려듣고, 제가 부족하니까 나보다는 아이들은 더 좋은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기대만 커졌던 거죠.
그런데 당신의 편지는 '아이가 떼를 너무 써요', '아이가 잘 울어요, 어떡하죠?'같은 걱정이 아니었어요. 사랑스러운 둥이들에게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는 고민을 담은 편지였죠. 그 마음 하나만으로도 당신은 이미 좋은 아빠입니다.
그런 당신에게, 아직도 좋은 엄마가 되려고 노력 중인 제가 한 가지만 말씀드리고 싶어요.
'아빠 이전의 당신을 잃지 마세요.'
얼마 전 [우리 아빠가 엄청 멋졌었다고?] 라는 그림책을 읽었어요. 그 책에 이런 부분이 나와요.
그때는 우리 아빠도 엄청 멋졌겠지?
언제나 진지한 아빠를 보면 상상이 안 돼.
아빠의 끝내주는 모습이 말이야.
아, 그런 아빠를 나도 봤으면!
둥이들을 만나기 전, 당신은 어떤 분이셨나요? 혹시 지금 당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조금씩 내려놓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 위주로만 맞추고 계신 건 아닌가요. 키즈카페, 아이들 입맛에 맞는 식당, 아이들이 좋아하는 놀이터, 그렇게 맞춰주는 것도 사랑이지만, 가끔은 당신이 좋아하는 곳으로 아이들과 함께 가보세요. 당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러 가면서, 아이들 몫으로 김이나 밑반찬을 조금 챙겨가도 괜찮아요. 그렇게 당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천천히 보여주다 보면, 어느 순간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생각보다 '같이 놀고 있다'는 느낌이 들거예요.
저는 아직도 아이들과 함께한 동네 책방의 기억이 남아있어요. 책이 가득한 숙소에서 찍은 사진을 꺼내보면 그날의 설렘이 아직도 고스란히 느껴지거든요. 그 설렘은 제것이었지만, 아이들도 함께 느꼈을 거라고 믿어요.
당신이 어떤 방법을 선택하든, 그것은 둥이들을 위한 최선의 선택일 거예요. 앞으로 둥이들과 좋은 시간들을 차곡차곡 쌓아가시길 바랍니다. 같이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아빠인 당신을 응원합니다.
당신의 편지 덕분에 저도 육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는 시간이 되었어요. 고맙습니다.
꽃샘추위 속 봄을 기다리며 편지를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