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집은 가난했을까
"저 사람은 흙수저야."
흔히 사람을 수저로 치환해서 부를 때 가난한 집에서 자랐으면 '흙수저', 부유한 집에서 자랐으면 '금수저'라고 한다. 사람을 경제적인 조건에 따라 수저로 계급을 나눈다는 게 썩 유쾌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그런 현실이 없다고 할 수도 없는 게 사실이니, 오히려 어떤 면에서 '수저계급론'은 그런 불공정한 세상에 대한 유쾌한 은유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종종 생각해본다.
나는 어떤 수저의 사람일까? 우리집은 가난했을까?
나는 특별시는 당연히 아니고, 광역시도 아닌, 도시라고 하기에는 다분히 '촌'스러운, 지방의 한 소도시에서 자랐다. 그 도시는 도시 전체에 백화점도 아닌 마트가 겨우 한두 개 있을까 말까 한 곳이었다. 부모님은 그곳에서 작은 동네 슈퍼마켓(보통 여기서는 점빵이라고도 부른다)을 했다. 우리집은 그 슈퍼에 'ㄱ'자를 90도 비튼 형태로 딸린, 기형적인 공간이었다. 가게의 유리문이 집의 대문이었고, 가게 공간이 마당이었으며, 마당을 가로질러 언제든 손님 맞을 준비를 하는, 문 없는 현관을 지나면 마침내 집이 나왔다.
예전에 이효리가 어린 시절 지냈다던, 이발소에 딸린 단칸방과 유사하다고 하면 이해가 될까? 이효리는 어린 시절 잠깐 지냈다고 하던데, 우리집은 그 10평 남짓한 공간에서 20년 넘게 여섯 식구가 복작복작하게 지냈다. 집인지 가게인지 모호한 그 공간처럼 우리 식구는 그 긴 시간동안 불분명하게 뒤엉켜 지냈던 것 같다. 거실은 부모님이 주무시는 안방이기도 했고, 때로는 온 식구가 식사하는 다이닝룸이기도 했다. 언니의 방은 내 방이 되었다가 동생의 방이 되었고, 때로는 자매들의 방이 되었다.
엄마는 우리의 엄마였다가 슈퍼 사장님이었다가 동네 이모들이 오면 기꺼이 공간을 내어주는 마음씨 좋은 친구가 되었다. 엄마의 몸은 열 개라도 모자랐기에 집은 늘 어수선했고, 신발은 항상 뒤엉켜 있었다. 우리집은 우리 가족에게는 굉장히 사적인 공간인 반면, 가게 손님들에게는 언제든 누구나 찾아올 수 있는 공적인 공간이기도 했다. 부모님은 일년 365일 가게 일을 하셔야 했기에 가족여행이나 외식은 꿈도 꿔보지 못했다. 또한 형제는 많고 형편은 넉넉지 않았으니 자라면서 내가 원하는 걸 풍족하게 가져본 적이 없다. 내 교복은 언니가 입었거나 언니 친구가 입은 교복이었다.
그런 걸 보면 나는 '흙수저'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우리집은 가난했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럼에도 나는 자라면서 우리집이 가난하다고 느끼지 못했다. 부모님은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분들이었다. 본인들이 입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에 욕심 내지 않고 자식들을 위해 인생을 살아오셨다. 어찌 되었든 급식비 한 번 밀린 적 없고, 자식 넷 모두 4년제 대학 학비와 생활비를 꼬박꼬박 챙겨주었고,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치매 걸린 할머니의 요양비도 책임진 분들이다. 그런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자라서 그런지, 넉넉지 못한 환경 속에도 큰 불만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도시에서는 다들 고만고만한 형편이었기에 특별히 열등감을 가지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다.
일흔 가까이 된 아버지는 요새 주변 지인들에게 '부자'라는 소리를 들으신다고 한다. 여전히 바삐 일을 하시고, 20년 넘게 하던 동네 슈퍼는 어느새 편의점이 되어 편의점 사장님이 되었다. 이제 설렁설렁 놀면서 일하라고 우리는 말하지만, 평생 습관이 되어서인지 그래도 놓지 못하신다. 때로 세금을 많이 낸다고 툴툴대기도 하시지만, 아버지 연배에 그 정도면 잘 사는 거라고 말하면 또 쉽게 수긍하신다.
물론 넉넉지 않은 형편에서 자라면서 생긴 결핍과 상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늘 바빴던 부모님, 곁에 있어도 나를 봐주지 않는 엄마, 채워지지 않은 정서적 허기로 인해 마음이 가난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가난한 삶에 움튼 생명력에 긍지가 생길 때도 있다. 양지 바른 땅에 자라 곱게 핀 꽃도 아름답지만, 아스팔트 틈에 움튼 이름 모를 들꽃도 아름답듯. 때로 그 척박한 환경에서 자란 생명이 기특하고 장한 것처럼.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니까.
가난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결국 어떤 절대적인 기준이 있다기 보다 삶에 대한 알 수 없는 '허기'이지 않을까 싶다. 무언가를 소유하고 싶고, 가져야만 이 삶이 완전해질 것 같은 욕망. 자기 얼굴이 없는 가오나시의 그 헛헛한 마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