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멈춘 그곳에서, 비로소 길은 시작되었다
사막에 길이 없다면, 누군가의 발자취가 길이 됩니다
캄보디아 날씨는 1년 내내 더운 날씨다. 때때로 한여름의 사막과 같다. 11월부터 다음 해 5월까지는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다. 메마른 땅은 아무것도 자라지 않을 듯하고, 뜨거운 햇볕은 모든 생명을 태워버릴 기세다. 나는 내 힘으로 이 거대한 사막을 어떻게 건너야 할지, 어디로 길을 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나의 계획과 꿈은 이 거대한 절망 앞에서 한없이 초라해 보였다.
몇 달간씩 물을 먹지 못한 디모데센터의 망고나무 세 그루는 2월이 되면 어김없이 탐스러운 열매를 주렁주렁 내어준다. 그러나 한국의 손녀에게 보낼 수도, 매일 먹을 수도 없어서 망고들은 땅에 떨어져 벌레들의 먹이가 되고 만다. 풍요롭지만 나눌 수 없고, 소중한 사람에게 전할 수 없는 막막함이 사막의 현실처럼 느껴졌다.
물질적인 풍요도 그러했다. 한국보다 값싼 과일을 맛볼 때 잠시 피로를 잊었지만, 제조 공장이 없어 한국보다 비싼 공산품들, 그리고 TV나 냉장고 같은 가전제품은 꿈도 꾸지 못하는 주민들의 삶을 보면서 답답함에 마음이 아팠다. 인터넷으로 세상 모든 것을 보면서도, 생활은 한국의 60년대 수준에 머물러 있는 현실은 거대한 사막 같았다.
캄보디아의 밤은 낮보다 차가웠다. 아무도 없는 텅 빈 센터 마당에 서면, 쏟아지는 별빛 아래로 캄보디아의 슬픈 역사가 바람을 타고 흐르는 듯했다. 190만 명의 영혼이 소리 없이 사라진 이 땅에서, 내가 내딛는 한 걸음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근원적인 외로움이 나를 덮쳐왔다. 그때 희미한 가로등 아래 발끝에 치인 것은 이름 모를 작은 야생화였다.
그 꽃은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척박한 흙더미 속에서 묵묵히 제 향기를 내뿜고 있었다. 화려한 장미처럼 붉지는 않았지만, 태양에 그을린 아이들의 볼처럼 건강하고 단단했다. 그 작은 꽃 한 송이가 내게 말을 건네는 듯했다. 선교는 거대한 고속도로를 닦는 일이 아니라, 이 메마른 땅에 작은 꽃씨 하나를 심고 그 곁을 지키는 인내의 시간이라고.
나는 곧 깨달았다. 내가 사막을 건너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그곳에 길을 내고 계신 분의 발자취를 그저 겸손히 따라가는 역할을 맡은 것뿐이라는 것을. 그분의 발자취는 거창하지 않았다. 그것은 찢어진 아이의 옷자락을 꿰매는 바늘 한 땀이었고, 서툰 캄보디아어로 건네는 "안녕하세요"라는 인사였다. 그리고 흙먼지 속에서 웃고 있는 아이들과 함께 뒹구는 시간이었다.
그 모든 순간 속에서, 보이지 않던 길과 느껴지지 않던 강물이 흐르고 있음을 발견했다. 사막에 피어난 작은 야생화는 그분이 내신 길의 증거였고, 아이들의 눈동자에 흐르는 희망은 사막에 내린 강물에 반짝임이었다.
사막에 길을 내고 광야에 광을 내시는 주님을 따라, 나는 오늘도 희망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 복음의 열매가 망고처럼 주렁주렁 열리는 날을 기약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