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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스 Apr 01. 2022

친절한 캐나다 사람들

Life in Canada

겨울이 지나간다. 꽤나 따뜻해진 공기들과 선선한 바람들이 날로 불고 있다. 하지만 비가 완전히 그친 것은 아니다. 3~4일 오락가락 겨울비가 내리다 하루 이틀은 완연한 봄날을 느낄 수 있는 날들. 날씨는 기나긴 겨울을 지나 이제 다가올 여름을 적응하라고 도와주는 것처럼 일주일에 하루, 이틀 맑은 날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낮은 완연한 봄이다. 하지만 해가 떨어지자 비로 바뀌었고 바람도 찼다. 봄과 겨울이 공존하는 듯한 느낌을 주던 어느 날이었다. 버스가 파업한 관계로 우비를 입고 출퇴근을 하고 있다. 퇴근 후 조금 약해진 비를 뚫고 인디펜던트로 향했다. 싱싱한 연어 한 토막과 위스키를 사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페달질을 하는데 무엇인가 걸리는 느낌을 받았다. 일정한 패턴을 두고 걸리는 듯한 느낌. 그때 내려서 확인했어야 했지만 잠깐 엉킨 것이겠지라고 속단한 내 멍청함은 결국 체인이 끊어지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봄봄봄


페달이 헛돌았다. 페달링 하는 느낌이 나지 않아 내려서 확인해보니 체인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발가벗은 마냥 처량하게 남겨진 자전거뿐이었다. 여기서부터 자전거를 끌고 집까지 걸어가게 되면 족히 1시간은 걸린다. 가방엔 장본 것들이 있었고, 손으론 자전거를 끌어야 하며 비 줄기는 다시 거세지고 있었다. 게다가 바람까지 찼다. 세상은 나한테 왜 그러지?라는 생각을 속으로 삼켰다. 짜증이 많이 난 상태로 가고 있었다. 걸어가는 방향 쪽에서 큰 라이트를 켜며 나에게로 오는 자전거가 있었고 혼잣말로 속사였다.


'아 왜 이 길로 라이트를 켜면서 오고 난리야.'


그 사람은 나를 지나치더니 멈춰 무언가를 들고 나에게 왔다. 당황스러웠지만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했다. 그의 손에 들려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내 자전거에서 끊어진 체인이었다. 알고 보니 반대편에서 자전거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가 내 자전거 체인이 빠진 것을 보고 내게 와준 것이었다.


"도움이 필요해요? 괜찮으시다면 제가 체인 다시 연결시켜드릴 수 있어요. 가방에 자전거 수리 도구가 있거든요."


당혹스러웠다. 곧바로 도와주세요!라고 해도 모자란데 너무 당황스러운 나머지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내가 주저하자 그는 다시 한번 물었고, 나는 그렇게 해주시면 감사하다고 말을 했다. 도로 가장자리에 자전거를 거꾸로 놨다. 자세히 보니 그의 자전거는 꽤나 비싼 브랜드의 자전거였고 대학생으로 보였다. 나에게 계속 설명을 해주면서 끊어진 체인을 능수능란하게 다시 설치했다. 


"최근에 저도 이렇게 끊어진 적이 있어서 도구를 샀어요. 다행이네요. 체인은 조금 낡아 보이니 바꾸는 것을 추천해요."


표정은 차가웠지만 말은 따뜻했다. 순간 짜증을 냈던 나 자신이 싫어졌다. 나는 옆에서 핸드폰 플래시를 켰고 작업하는 자전거 방향으로 비추었다. 그러다 차가 한 대 우리 옆으로 섰다. 차 도로를 막고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우린 차를 향해 쳐다봤다. 


"무슨 일 있나요? 도와드릴까요?"


우린 괜찮다고 말하며 그를 돌려보냈다. 순간 신기한 감정을 느꼈다. 이렇게 모르는 동양인을 도와주는 모습에 감동했다. 물론 동양인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이겠지. 캐나다 사람들이 친절하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캐나다 시민 의식에 대해 감탄하고 있는 와중에 체인은 다시 정상적으로 설치가 되었다. 그는 내게 혹시 자전거 수리하는 곳을 잘 모르면 가르쳐준다고 했다. 나는 더 이상 민폐 끼치기 싫어 괜찮다고 말하며 헤어졌다. 비도 오고 정신이 없는 상태라 통성명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헤어졌다. 아쉬웠다.


걸어서 1시간 길을 자전거로 달리며 생각했다. 과연 나였으면 늦은 밤 모르는 사람의 자전거를 도와줬을까? 섣부르게 대답이 나오지 않은 걸 보니 아마 그냥 지나쳤을 것 같다. 그러나 동시에 나도 받았으니 다른 사람을 도와주어야겠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 마음을 현재 아직까지 가슴에 새겨두고 있다. 


받았던 선의가 다른 사람에게 갔을 때 빛을 발하는 것 같다. 오늘 평범한 밤에 어느 소년의 선의가 특별한 의미를 깨닫게 만들어줬다. 이번 겨울의 가장 아름다운 날이었고 돌아오는 길은 그렇게 춥지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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