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캐나다 1년

Life in Canada

by 림스

캐나다로 온지도 1년. 정확히 말하면 1년 하고 한 달이 지나고 있다. 영주권을 준비하고 있지만 이곳에서 남은 인생을 살아갈지, 한국으로 돌아갈지 모르기 때문에 이민이라는 표현보다는 이사라는 표현을 썼다. 어쩌다 다른 나라로 가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리의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깐. 2022년 대부분 나라들이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세상에서 이민이라는 표현보다도 이사라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대략 1년 전, 코로나 규제가 심했을 당시 이사를 결정했다. 입국 심사 신청서 종이를 작성할 때 목적이라는 칸을 제일 늦게 작성한 것으로 기억한다. 나의 목적을 쓰기에 칸이 부족했었다. 어쩌면 여기로 오기로 결정을 했었어도 내 마음은 그때까지도 여전히 흔들렸던 것 같았다.


캐나다에 도착 후 아는 사람도 하나 없는 곳에 뚝 떨어진 느낌을 받았다. 격리하는 동안 아무것도 없는 집 안에서 캐리어를 밥상으로 삼고 담요를 이불 삼아 2주를 버텼다. 다행히 와이파이는 있었다. 다시 하라고 하면 못 할 것 같다.



격리가 끝난 후 곧바로 일을 시작했다. 불규칙하고 이국적인 식사를 하며 낯선 사람들과 피상적인 만남을 가져야 하는 일이었다. 초반엔 매일이 긴장상태였다. 대부분 친절한 캐나다 사람들이었지만, 1%의 확률로 이상한 손님들을 만나는 경우가 있었고, 그들은 항상 내게 상처를 냈다. 힘든 상황도 많았지만 내가 선택한 길이기에 그저 앞으로 걸어가야 했다.


반면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내 자전거가 고장 날 때마다 무료로 고쳐주는 마르틴, 캐나다 홈 파티 문화와 콘서트를 제대로 알려준 팀. 그리고 나에게 늘 웃는 모습으로 반겨주는 몇몇 손님들. 서로의 일상을 짧게나마 공유하며 대화를 해주는 이웃까지. 한 때 혼자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 생각이 영원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람들이 있어 버틸만했던 지난 1년이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게 되는 지난 1년이었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친구들까지 그리고 스쳐 지나간 사람들까지. 길지는 않지만 그러 닿고 짧지는 않은 시간들 속 몇몇은 아쉬웠고, 몇몇은 미안했다. 어느 기억들은 시간이 지나도 옅어지지 않는 것들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반성을 해야 하는 부분들도 분명히 존재했다. 철저히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뒤를 돌아보니 당시에 이해되지 않았던 것들이 비로소 이해되는 경우가 있었다.


퇴근 후 우연히 뒤를 돌아보다


내가 진행하는 영주권 점수가 오랜만에 발표가 되었다. 예상보다 높은 점수가 나와 아침에 절망했다. 노력할 수 있는 부분을 최대한 하면서 운을 바라는 수밖에. 이런 상황일수록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을 하고 묵묵히 기다려야 한다는 것쯤은 아는 나이가 되었다.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해야겠다. 절망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깐.


씁쓸한 마음속에서 자전거를 탔다. 버스 정류장에 있는 도미노 피자 50% 세일 광고를 봤다. 절망적인 순간에도 이런 광고를 보니 군침이 싹 돋았다. 아무리 슬퍼도 떡볶이는 먹고 싶어지는 법이니깐. 자전거를 타고 도미노 피자 한 판을 사들고 집에 들어왔다. 혼자 먹기 넉넉한 사이즈의 피자와 맥주 몇 캔 그리고 보고 싶었던 영화까지. 기분이 나아졌다.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슬픔이 내게 생겨도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반드시 동일한 크기의 행복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지난 1년간 느꼈다. 그저 소소한 행복. 이것이 우리의 슬픔과 상관없이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일지도 모른다.


따스한 햇살 아래에서 다가올 구름을 걱정하지 말아야 한다. 그저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시간이 부족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