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편의점, 91살 손님

Life in Canada

by 림스

눈만 내리던 겨울이 비 내리는 봄으로 바뀐 날씨.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을 생각한 적이 있다. 과연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을까? 누군가는 불변은 없다고 한다. 캐나다에서 지낸 지 어언 1년. 지난 1년 동안 나에게 사는 곳, 인간관계, 스타일, 생각까지 많은 것이 변했다. 많은 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표정은 조금 무거워졌다.


근무 스케줄에도 변화가 있었다. 오후에서만 일하던 나는 오전 스케줄도 병행하고 있다. 아침 7시 45분 즈음 도착해 편의점 오픈 준비를 한다. 문 닫았던 방식을 반대로만 하면 된다. 오전은 오후와 다른 느낌을 준다.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침을 준비하는 엄마들이 주로 온다. 주로 식빵과 우유, 시리얼 그리고 달걀이 주요 상품이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다시 한가해진다. 점심시간이 지나면 후식을 찾으러 오는 손님들이 있다. 어느 날이 좋은 토요일 점심, 브런치를 먹고 온 손님들 5명 정도가 편의점으로 찾아왔다.


현재 편의점 문 앞에 경고문 하나가 있다. 백팩은 문 앞에 두고 들어가라는 메시지. 요즘 학생들이 물건을 훔치는 사건들이 종종 발생한다. 다른 직원이 일하고 있을 때, 음료수 냉장고 앞에서 대놓고 음료수를 가방에 넣다 적발된 학생들이 있었다. 그 후로 시행된 규칙이다. 처음엔 학생들의 반발이 있었지만, 싫으면 오지 말라는 말에 고분고분해진 잼민이 들이다. 이유는 이곳 근처에 마트는 여기 한 곳뿐이다. 마트에 가려면 차 타고 10분 정도 거리까지 가야 한다.


KakaoTalk_20220411_133639547_01.jpg 어느덧 봄


가족으로 보이는 5명 손님 중 한 명이 내게 말을 걸었다. 점심시간 이후라 가게 안은 조금 붐볐다. 아직 손님들이 계산하기 전이라 잠깐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어르신 한 분을 가리키며)"저분이 91살인데, 중학교 시절에 여기 단골이었다고 해요."


솔직히 놀랐다. 그분의 중학교 시절이면 대략 75년 전인데. 그때도 이곳이 존재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현재 사장님이 거의 20년 가까이 운영했다고 들었었고, 그 전에도 마트였다는 소리는 들었었다. 건물이 조금 낡았다고 생각은 했었지만 그렇게 오래된 줄은 몰랐었다.


"문 앞에 있는 경고문을 보고 생각난 것이 있대요. 자기도 중학교 때 여기서 캔디나 젤리 같은 거 훔쳤다고 하네요."


나는 웃으며 할아버지를 봤다. 옆에서 할아버지께서 웃고 계셨었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지만, 그냥 생각나는 대로 뱉었다.


"오! 우리가 드디어 도둑을 잡았네요!"


가족들 전부가 빵 터지셨다. 나는 곧바로 장난이었다고 말했다. 계속 웃고 계신 할아버지의 눈빛과 표정은 마치 중학교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장소와 추억이 그의 청춘을 불러온 것이다. 봄 날씨처럼 해맑고 따뜻한 웃음이었다. 할아버지께서는 가게를 둘러보고 싶다고 하셨고, 나는 천천히 둘러보시라고 말했다. 편의점을 둘러보며 어렸던 본인을 떠올리셨을까?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밀린 손님들의 계산을 해야 했다. 계산을 하던 중 가족분들은 나가면서 나에게 인사를 했다. 좋은 하루 보내라는 말. 피곤한 마음이 조금은 풀리는 느낌이었다. 밀린 손님들의 계산을 마치고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4~5명 손님을 계산하는 동안까지도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께서는 아직까지 차에 올라타지 못하셨다.


젊은 날 에너지 넘치고 대담했던 그는 이젠 가족들 도움 없인 차에 올라타기 힘들어진 나이가 되셨다. 몸은 세월이 흘러 많이 변했지만 그가 가진 새하얀 추억은 영원할 것이다. 어쩌면 변하지 않는 것이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게 안에 있던 모든 손님들이 나갔다. 할아버지네 가족들도 떠났다. 다시 한가해졌다. 노르스름한 햇살이 가게 안으로 들어왔고, 나는 홀로 서 있으면서 내부를 훑어봤다. 할아버지 어린 시절의 모습을 상상을 하니 묘한 울림이 찾아왔다. 설명할 수 없는 뭉클한 감정이었고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저 흘러간 시간에 대한 무게감과 무력감만 느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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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근무 교대자가 왔다. 학업과 알바를 병행하고 있는 학생이다. 캐나다는 15세부터 부모 동의 하에 알바를 할 수 있다. 그녀의 나이는 15세. 중2병 학생답게 진한 눈 화장을 한 얼굴과 행동은 가벼운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그 모습이 퍽 어울렸다. 남에게 피해는 주진 않는 학생이었다. 15살 시절을 이야기하시던 91세 손님과 15살 아르바이트생을 보며 묘한 감정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따뜻했고 표정은 가벼워졌다. 달빛이 들어오는 방을 비교적 싼 값에 월세를 내고 있다거나, 입이 벌어질 만큼 아름다운 자연을 본다는 것도 좋지만, 캐나다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난다는 사실이 가장 큰 행운으로 생각한다. 아마 이런 이유로 캐나다로 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몇 안 되는 행운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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