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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스 Aug 29. 2022

자려고 눕자, 화재 경보가 울렸다

Life in Canada

새벽 1시. 침대에 누웠다. 유튜브 쇼츠를 아무 생각 없이 보다 배경음악이 이상한 쇼츠가 나왔다. 참 요란한 배경음악이었다. 하지만 다음 쇼츠에서도 똑같은 소리가 났다. 곧바로 다음, 다음으로 넘겼다. 연이은 똑같은 소리. 유튜브를 종료한 후 나는 깨달았다. 이 소리는 우리 집 복도에서 나는 소리라는 걸.


소리의 정체는 화재경보였다. 복도로 나온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별다른 특이사항을 볼 수 없었다. 창문을 열어도 연기 나는 곳은 없었고 평상시와 똑같은 밤이었다. 잘 못 울렸겠지라고 생각하는 찰나 누군가 소리쳤다.


에브리바디 아웃!!!


벌떡 일어났다. 아이폰과 지갑 그리고 열쇠만 챙기고 나왔다. 3층에 사는 나는 계단을 이용했다. 천천히 내려갔다. 2층은 뿌연 연기로 가득했고, 1층은 암흑이었다. 기침을 하며 밖으로 나오자 아파트 주민들이 다 나와있었다. 처음으로 보는 아파트 주민들. 대부분 혼자 사시는 노인분들이었다.


불은 1층에서 나고 있었다. 창문을 통해 검은 연기가 나오고 있었다. 아직 큰 화염은 나기 전이었다. 어떤 남자와 나는 창문으로 다가갔다. 안을 확인하려고 하는 순간 펑!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안에서 무엇인가 터진 것이었다. 재빨리 나는 화재가 난 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졌다.


작은 방에서 나온 뿌연 연기


오래된 아파트였다. 우리나로 예를 들면 원 룸 빌라 같은 느낌. ㄱ자 모양의 아파트였다. 복도는 호텔처럼 카펫으로 되어있어 불이 번지면 쉽게 번질 것 같은 재질이었다. 


엠블런스 차와 소방차 그리고 경찰차가 도착했다. 소방관들이 화재현장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불은 크게 번지기 전에 진압이 되었다. 그리고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안에 사람이 없어 인명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엠블런스는 돌아갔고, 소방관들은 아파트 안에 있는 가스를 밖으로 빼는 작업을 시작했다. 시간은 새벽 3시를 지나고 있었고, 밤하늘의 별은 이런 상황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경찰은 불이 난 건물을 통제했다. 먹고 있는 약이 있는 사람들은 소방관과 같이 방 안으로 들어가 약만 챙기고 나올 수 있었다. 어르신들이 많아서 그런지 많은 분들이 소방관 앞에 줄을 지었다. 그리고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친인척이나 친구 집으로 가라고 했다. 오늘은 가스 때문에 출입이 어렵다고 말했다. 친인척이 없는 나 같은 외국인 노동자들에겐 이 새벽에 갈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입구 통제


내가 머물고 있는 건물은 불이난 곳과 정반대 방향에 위치해있다. 다행히 그곳엔 가스의 영향이 별로 미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관들은 우리에게 화재가 발생하지 않은 건물을 사용하는 주민들은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소방관은 내 방으로 들어와 가스 수치가 정상 범위인 것을 확인한 후 돌아갔다. 다행히 내 방에서 잘 수 있었다.


침대에 다시 누웠다. 시간을 보니 새벽 5시. 날이 밝아 오고 있었다. 잠은 곧바로 오지 않았다. 여러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있는 층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면 어땠을까? 끔찍했다. <죽음은 삶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일부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어느 소설가의 문장이 떠올랐다. 그의 말마따나 내 주변에 죽음이 하나의 일부로 존재하고 있었다.


이번 일은 죽음은 나에게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던 나에게 조금은 특별한 가르침이었다. 죽음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는 것. 그리고 <누구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는 어느 교수님의 일침이 다시금 떠올랐다. 그리고 그게 나라고 특별하지 않다는 것도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찌뿌둥한 피곤에 젖어 일어났다. 출근을 하기 위해 방 밖으로 나왔다. 아직 아파트 복도엔 가스 냄새가 남아 있는 것을 보니 쉽게 몰아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화재가 발생했던 방은 출입이 통제가 되었고, 그 이후의 이야기는 잘 모른다. 하지만 인명 피해는 없었다는 점은 확실하다. 이번 화재는 내 생각 속에 죽음이라는 불꽃을 지폈다. 현재를 소중히 다루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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