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휘슬러의 삶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지만, 집 나와서 제일 서러울 때가 아플 때이다. 누가 옆에서 챙겨주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다. 룸메이트나 같이 사는 사람한테 챙겨 달라하기도 미안한 마음에 아무 말 못 하고 그저 혼자 끙끙 앓았다. 배에 통증이 있을 때마다 소리 낼 수 없었다. 자고 있는 룸메이트에게 미안해 혼자 속으로 삼켰다. 나 혼자 외로운 섬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캐나다에서 즐거운 겨울을 보내고 있는 와중에 장염에 걸렸다. 전 날에 술을 마셔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전날에 먹은 음식이 문제였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장염이 나에게 찾아왔다. 전 날 밤부터 으스스 춥더니 자고 일어나니깐 오한에 시달렸다. 날씨가 추워서 생기는 추위와는 다른 추위였다. 새벽 내내 계속 화장실과 침대를 반복해서 오갔다. 한국에서 비상용으로 가져온 장염 약이 있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하는 수 없이 오전에 일어나 슈퍼바이저에게 전화를 걸어 설명을 했고, 몸조리 잘해!라는 말을 들은 후 하루를 쉬게 되었다.
당시 영주권을 준비하던 때라 영어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냥 누워만 있을 수 없었다. 한바탕의 고통이 가라앉자 조금 괜찮아진 느낌이 들었다. 아픈 몸을 이끌고 도서관에 갔다. 그러나 괜찮아진 것이 아니었다. 몸이 더 으스스 추워진 것 같고, 계속해서 배가 아팠다. 몸이 아프니 당연히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다. 결국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꼭 이런 날에는 날씨가 좋은지 알 수가 없다. 집으로 가기 전 마트에 들려 이온 음료 작은 사이즈 3통을 사들고 집으로 왔다. 오늘 하루는 이 이온 음료만 마셔야만 했다.
이온 음료 한통을 비워내고 침대에 누웠다. 갑자기 서러움이 밀려들어왔다. 여러 생각이 머릿속에서 섞였다.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과 한국 집의 따뜻함이 그리워졌다. 한국이었으면 본죽의 전복죽도 먹을 수 있을 것이고, 병원도 쉽게 갈 수 있었지 않았을까?라는 상상이 나를 더 힘들게 했다. 분명 집에 있는데 집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울리는 핸드폰.
아들! 밥 먹었어?
엄마는 출근하실 때마다 나에게 전화나 카톡을 하시곤 했는데, 이 날은 카톡이었다. 이 평범한 카톡 하나가 그 날엔 특별하게 다가왔다. 전화를 걸어 아프다고 어리광이라도 부리고 싶었지만, 내 나이가 떠올랐다. 이내 그만두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밥 잘 먹었다.라는 말과 함께 잘 지내고 있다.라고 답장하는 것뿐이었다. 나머지 이온 음료를 마시고 다시 누웠다. 집 나온 서러움을 느끼기 위한 모든 조건이 갖춘 하루였다.
다행히 그 날 하루만 고생하고 장염은 가셨다. 이 장염은 단지 오한과 설사 복통만 주지 않았다. 한국에서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결코 당연하지 않다.라는 깨달음. 왜 인간은 항상 뒤늦게 깨닫는지. 왜 아파야만 알게 되는지. 항상 뒤늦은 건 가슴이 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