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휘슬러의 삶
캐나다에서 새해를 맞았다. 캐나다라고 해서 특별할 것이라곤 없었다. 굳이 특별한 것은 일만 했다는 점이다. 연말과 새해에 쉬는 북미 문화 때문에 12시간 근무를 5일 연속으로 했고, 최소 8시간 이상씩 12일 연속으로 일을 했다. 물론 타의가 아니었고, 자발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다보니 연말의 느낌을 받지 못한 채 새로운 해를 맞이했다. 대부분 손님들은 행복해 보였고, 눈이 소복소복 내리는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모습들이 사뭇 부럽기도 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어떤 이의 행복을 위해선 다른 이의 불행이 필요하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일만 하다 보니 세상이 흑백으로 보였다.
지난 2019년을 돌이켜보면 내 20대 중 가장 인상 깊은 해였다. 대학 졸업을 했고, 아는 이 하나 없는 낯선 땅인 캐나다에 왔다. 지난 몇 년간 만난 사람들보다 올 한해 만난 사람들이 더 많았고, 국적뿐만 아니라 나이, 성별, 인종들도 다양했다. 그 만큼 많은 일들도 내게 일어났다. 캐나다에서 면접도 보고, 내가 살아갈 집도 구했고, 하우스키핑 일도 하고 있으며, 사기도 당할 뻔했다. 이 모든 것들이 불과 8개월 안에 벌어졌다.
혈육으로 이루어져있지도, 사회적 유대감도 형성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게 도움을 받기도 했고, 도움을 베풀기도 했다. 베푸는 즐거움에 대해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 베푼 사람에게 내가 베푼 만큼 받지 못하면 실망하는 나를 발견하면서, 나란 놈이란 아직 베푸는 것에 익숙하지 않고, 성숙하지 못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깨달았고, 동시에 아무런 대가없이 베푼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알게 되었다.
2019년은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 가치관들도 바뀐 한 해였기도 했다. 그동안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쉬운 것들이 아니었고, 내가 가지고 있던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달았던 한 해였다. 또 순간을 즐기는 법을 알게 되었다. 미래 생각을 안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미래를 위해서는 현재를 살아야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날들이 하루하루 쌓이다보면 미래가 된다는 것도 완전히는 아니지만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행복한 순간들이 꽤 있었던 것 같다. 캐나다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났던 일, 외국인들과 술을 마셨던 일, 자전거를 타다가 지는 해가 아름다운 호수에 가만히 걸려있는 것을 봤던 일, 청소하던 방에서 100불의 팁을 발견했던 날, 오후 스케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밤하늘에 있는 수많은 별들을 봤던 일, 게다가 그 별 중에서 별똥별을 봤던 일 등이 있다. 이처럼 행복이란 게 엄청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매우 단순하고 소박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행복을 느끼면서 그 순간을 알아차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처럼 그것을 되돌아보며 그 순간이 얼마나 행복했었는지를 깨닫는 것 같다. 2020년엔 정말 운이 좋아 우연히 행복함을 느낀다면 그리고 그 순간을 알아차린다면, 아무것도 안한 채 그 순간을 몰입하여 만끽할 것이다.
2020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사실 잘 모르겠다. 비자가 끝나는 해이기도하고, 한국에 돌아가서 무슨 일을 해야 할지도, 아니면 여기서 조금 더 지내기 위해 영주권을 준비해야할지도 어느 한 곳에 확신이 서질 않는다. 한국에서는 이런 고민들을 내 앞에 나타나면 방황을 하고는 했다. 며칠씩 술을 마시기도 했고, 아무것도 안하는 날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항상 옳은 선택을 하려고 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휘슬러의 날씨는 이러한 문제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힌트를 주고 있었다.
현재 휘슬러의 날씨는, 화창했다가도 금방 비가 부드럽게 내리기도 한다. 그러다 그 비들이 이 세상에 조금 더 오래있고 싶어졌는지 함박눈이 되어 쌓이기도 한다. 이처럼 거대한 대자연의 마음도 갈팡질팡하며 방황을 하는데, 그 보다 작은 생명체인 우리가 방황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휘슬러의 날씨는 생각이 많은 나에게 ‘괜찮아’라고 말하는 것 같았고,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그래서 2020년은 조금은 편안하게 생각하려고 한다. 일어날 일들은 결국 일어난다. 또 어떤 선택을 내려야할 순간이 나에게 닥쳐올 것이다. 내가 선택한 그 선택이 설령 실패를 하더라도 그 실패를 조금씩 교정하면서 하루를 살도록 할 것이다. 그리고 2020년 마지막 날에 이 글을 읽을 때 ‘이번 한 해 나름대로 초심을 잃지 않았고, 행복했었어.’ 라는 생각이 들 수 있도록 살아야겠다.
첫눈도, 봄비도 되지 못한 겨울비를 바라보며, 휘슬러에서 2020년을 맞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