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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스 Feb 20. 2023

신의 선물 오로라, 영원히 기억될 밤

Life in Canada

캐나다 유콘의 마지막 밤. 우린 낮부터 날씨를 체크했다. 하늘을 보니 생각보다 구름이 많이 걷혔다. 파란 하늘이 듬성듬성 보였다. 햇빛이 강하진 않았지만 분명히 우리를 비추고 있었다. 오로라 관측 가능성은 16%였다. 16%도 분명한 가능성이었다. 없는 거보다 낫다. 단 한 번일 때 중요한 것은 기다림이었다.


오로라 빌리지에 도착했다. 눈싸리가 흩날리고 있었다. 눈싸리가 흩날린다는 건 구름이 많다는 말과 동의어였다. 하지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정지한 구름들 사이로 푸른 밤하늘 조각 하나가 보였다. 그 한 조각은 우리의 희망이었다. 그 한 조각이 다른 조각을 부추겨 오로라까지 끌려오길 간절히 원했다. 입에서는 힘없는 탄식이 터졌다.


우린 실내에서 핫초코를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오로라가 없는 그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대화의 주제는 이곳저곳으로 튀었다. 무서운 이야기와 살아온 나날들이 섞인 대화들. 시간은 어느새 새벽 1시가 지나가고 있었다. 우리에겐 2시간 밖에 남지 않았었다. 누군가 소리쳤다.


Northern Lights!!

허겁지겁 밖으로 튀쳐나갔다. 누군가 자고 있던 나에게 물 한 바가지를 뿌리는 듯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밖으로 나와있었다. 하늘을 바라봤다. 누군가 지저분한 구름을 치웠다. 북쪽 하늘 먼 곳에서 흐릿한 구름들이 사라지고 푸른색이 깃든 오로라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마치 봄이 싱그러움을 뽐내듯 오로라 빛줄기가 하늘에 피어올랐다.


오로라는 하늘에 흩뿌려져 있었다.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녔고, 시시각각 모양은 계속 변했다. 오로라는 매 초마다 변화했다. 한 순간도 하늘에 눈을 떼면 안 될 것만 같았다. 오로라가 향하는 곳은 황홀한 색채로 물들었다. 아름다움과 탄식 사이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오로라 뒤편에는 별들도 존재했다. 조용히 자신만의 빛을 내뿜을 뿐이었다. 오로라에 가려 잘 보이진 않았지만 크고 작은 별들이 깨진 유리조각처럼 흩어져있었다. 오로라 반대편엔 달이 떠있었다. 그날따라 유난히 밝았던 달. 달은 자신의 빛을 뽐내며 자신의 갈 길을 묵묵히 가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은 모습. 달은 오로라를 시기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최소 5개 국어는 섞인 듯했다. 오로라를 본 후 나오는 말들은 꾸밈없는 단어들이었다. 자극적이면서 생명력이 깃든 말들이었다. 경이로움 앞에 무릎이라도 꿇고 싶은 심정이었다. 오로라는 마치 색채가 깃든 바람 같았다. 그 바람을 맞이하니 쌓인 모든 고민과 피로들이 빛에게 상쇄되는 기분이었다. 비워있던 나만의 빈 잔이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오로라는 갑자기 시작해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재즈와 닮았다. 시작을 모르는 재즈가 우리에게 스며들듯 갑자기 나타난 오로라. 유콘의 밤하늘에서는 소리 없는 재즈가 연주되었다. 별이 음표면 오로라는 재즈였다. 구름 없는 밤하늘은 기꺼이 악보가 되었다. 찬란한 춤사위를 뽐내는 오로라를 보니 마음이 몽골몽골 해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오로라는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떠났다고 해도 아쉽지 않았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살다 보면 이해하고 싶지도, 이해되고 싶지도 않은 것들이 있다. 나에게 오로라가 그랬다. 오로라는 그렇게 창공에서 피고 지었다. 들리지 않은 여운이 몰려왔다.


달 빛이 만들어내는 짧은 그림자, 흩뿌려져 있는 쌀처럼 퍼져있는 별, 하늘엔 신이 남긴 자국 같은 선물, 위잉 위잉 불어오는 바람, 추운 몸을 녹여줄 티피 속 장작불, 다양한 국적의 언어들과 목소리, 예상하지 못한 오로라 빛이 설산 뒤로 넘어갔다. 나는 더 이상 오로라를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다시금 삶의 동기, 여행의 이유를 되찾았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라고 한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그러한 인생을 마주하게 된다면 예상보다 괴롭다. 그 사실을 인지하고 수정하는데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 계획대로 되지 않고 있었던 나의 인생에서 오로라는 조금 더 버텨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주목을 받지 못한 달이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듯 내가 정한 길을 조금 더 걸으려고 한다. 언젠가 자신의 빛을 뽐내는 달 빛처럼 빛나는 순간을 맞이할 테니. 이번 여행은 그 아무도 힘내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그 어느 여행보다 힘이 되는 여행이었다. 단비, 혜성, 보라의 이야기들, 야생동물과 온천, 유콘의 햄버거와 맥주 그리고 오로라까지. 새로운 삶의 에너지를 얻었다.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는 내게 필요했던 여행이었다.


비록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는 오로라를 볼 수 있었다. 최종적으로 모든 의미는 어느 순간까지 기다려야 온 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로라는 나의 내면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자국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인생의 하이라트 장면 하나가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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