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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스 Jul 27. 2021

이토록 아름다운 산이라면

캐나다 등산에 대하여

              PANORAMA RIDGE     


BC산악회에서 3번째 등산이었다. 왕복 30Km. 회장님과 같이 일하고 있는 나는 가게에서부터 Panorama Ridge의 아름다움을 귀로 들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직접 눈으로 보기 위해 이번 산행을 기대했다.     


하지만 사장님께서는 이번 산행이 완벽하기 위한 3가지 조건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Day pass 구매

왕복 30km를 할 수 있는 체력

화창한 날씨     


Day pass 구매는 코로나로 인한 예약제라고 말할 수 있다. 하루에 제한된 인원만 등산할 수 있도록 만든 임시 제도이다. 작년에는 표를 예약할 수 있는 시간이 되자마자 표가 다 예약되어버려 Panorama Ridge 갈 수가 없었다고 한다. 웬만한 대학교 인기 강의 수강 신청 경쟁률 뺨쳤다. 하지만 수강 신청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인기 강의를 한 번도 실패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가뿐하게 성공했고, 몇몇 멤버들께서도 성공했기에 우리는 Day pass 구매에 대한 첫 번째 조건은 충족했다.      


두 번째 체력. 평소에 운동을 좋아했고, 체력에는 자신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화창한 날씨. 이 부분은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몇 주째 비가 안 오고 있는 BC 주는 딱 우리가 가는 날에 비 예보가 잡혔다. 예보는 적중했고, 아침에 구름이 가득한 하늘에서 비가 보슬보슬 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산 날씨는 변덕이 심해 수시로 바뀐다고 했다. 그 변덕을 기대하며 산행을 시작했다. 비가 내려 쌀쌀한 날씨였지만, 산을 오르니 땀이 제법 났다. 얼마 안 가 겉옷을 벗었다. 산의 나무들이 비를 막아줘 축축하지 않게 등산을 할 수 있었다.     


비 오는 산도 나름의 운치가 있었다. 비 때문에 아쉬운 산행이 될 것 같았는데,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수직으로 솟아있는 나무들과 수평으로 펼쳐져 있는 이슬들이 만나 빚어낸 푸른 숲은 꽤 몽환적이었다. 앞을 봐야 하는데 계속 나무 꼭대기 쪽으로 눈이 갔다. 이 순간을 느끼고 싶었다.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숲


지그재그 산행을 9KM 정도 하고 나니 평지가 나왔다. 어느 산이든 매도우는 우리의 다리를 편안하게 해 준다. 푸른 나무색만이 아닌 노랑, 빨강, 파랑, 하얀색의 꽃들이 주위에 널려있었다. 각각의 색으로 우리 눈을 즐겁게 해 줬다.      


매도우 끝자락이 되니 두 그룹이 나뉘었다. 정상까지 가는 그룹, 여기서 점심을 먹는 그룹. 정상을 가본 사람과 체력적으로 힘드신 분들은 점심을 먹는 그룹을 선택했다. 나는 산의 변덕을 믿기로 해 정상까지 가는 그룹을 선택했다. 이왕 여기까지 온 거 끝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정상으로 가는 또 다른 초입부터는 매서운 경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흙이 아닌 바위들로 이루어진 경사들이었다. 비까지 내려 몇몇 돌들은 미끄러웠다. 그곳은 길과 길이 아닌 것의 경계가 모호했다. 길은 이따금 사라졌고, 길 아닌 것이 굳이 가면 또 길이 되었다. 모든 입구는 출구가 되었고, 출구는 입구가 되었다. 같은 시간대에 산행을 시작했던 외국인들이 또 다른 길에서 나타났다. 내가 가는 길이 곧 길이었다.     



구름인지 안개인지를 뚫고가면 정상에 갈 수 있다.


고행을 뚫고 정상에 도착했다. 신은 Panorama Ridge의 완벽한 풍경을 낯선 이방인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같은 시간대 출발해 자주 마주치던 다른 일행들도 도착해있었다. 산행 중간에 만났던 그들의 표정은 오늘 날씨처럼 어두웠는데, 정상에서는 다들 웃고 있었다.      


정상에서 멍하니 푸른 호수를 쳐다보았다. 불멍이 아닌 호멍을 때리고 있는데 갑자기 어두웠던 하늘이 밝아지면서 Panorama Ridge의 아름다움을 살짝 보여주었다. 설레는 마음이 들려는 찰나 다시 구름 한 점에 어두워졌다. 그리고 몇 번을 반복했다. 하지만 이런 날씨에도 Panorama 산이 주는 감동이 있었기에 만족했고, 발걸음 가볍게 하산할 수 있었다.      


저릿한 감동을 뒤로한 채 정상에서 하산하기로 했다. 미끄러운 돌들을 거쳐, 매도우를 지나고 있었다. 하행하는 산길은 상행하는 산길과는 다른 느낌을 나에게 심어주었다. 상행했을 때 미처 보지 못했던 작은 틈새에 피어난 들꽃, 나무들이 눈에 들어왔고 호수들의 색들이 선명하게 보였다. 마치 새로운 산행을 하는 느낌. 우리 삶에도 시간이 흐르고 뒤를 돌아봐야 이해되는 것들이 있다. 과거에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는 순간들이. 이런 이유로 종종 산을 인생에 비유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름이 걷힌 하늘


이번 산길은 One-way였기에 혼자서 터벅터벅 걸어 내려올 수 있었다. 나만의 속도로 이번 산행을 정리하며 내려오고 있었다. 지그재그 길을 들어서는 순간 나무숲 사이로 소담스럽게 햇살이 쏟아졌다. 지금 나타난 쏟아진 햇살이 야속했지만 작은 유기체인 나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 햇살을 기억하고 다음을 기약하는 수밖에. 이토록 아름다운 산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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