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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경기에서 가장 최악의 순간은 무엇일까? 응원하는 팀이 경기 끝나기 전 실점을 허용하는 순간? 좋아하는 선수가 퇴장당하는 순간? 물론 이러한 상황도 최악의 순간이겠지만 진정한 최악의 순간은 최선을 다하던 선수가 그라운드에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는 순간이 아닐까? 이처럼 피치 위에 쓰러져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오지 못한 선수가 누가 있는지 살펴보자.
1. 기적의 사나이 패브리스 무암바
패브리스 무암바는 콩고 민주공화국 출신으로 부모님과 함께 영국으로 명명해 새 국적을 얻었다. 무암바는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거친 몸싸움과 투지가 넘치는 선수였다. 2005년 잉글랜드 청소년 대표로 발탁되면서 일찌감치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볼튼에서 이청용 선수와 함께 선수생활을 했었다.
하지만 하늘은 그의 축구 재능을 모른 채 한 것일까? 무암바는 2012년 3월 FA컵 8강전 토트넘 훗스퍼와 경기 도중 쓰러졌다.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중계 카메라는 황급히 화면을 관중석 쪽으로 돌렸다. 사고의 순간을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관중석에서는 기도하는 관중, 우는 관중들이 있었고, 무암바의 이름이 경기장 안을 가득 채웠다. 이후 응급 처치를 받았지만 경기장 내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쓰러진 무암바는 산소마스크를 쓰고 즉각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양 팀 감독과 심판은 협의를 거쳐 더 이상 경기를 진행할 수 없다고 판단해 결국 경기를 취소시켰다.
관중들의 외침과 간절함이 무암바에게 전해진 걸까? 78분간 정지되어있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그 후 무암바는 치료를 받고 긴 재활 시간을 가졌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좋아하는 축구는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결국 24살이라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은퇴 선언을 했다. 그 후 무암바는 2015년 7월 스탠퍼드 셔 대학교에서 스포츠 저널리즘 학사 학위를 우수한 성적으로 취득할 정도로 건강한 상태가 되었고, 현재 지도자로 축구 인생 2막을 열었다고 한다.
2. 구티의 후계자로 불렸던 루벤 데 라 레드
루벤 데 라 레드(이하 루벤)는 1999년 레알 마드리드 카데테 B 유스팀에 입단하였다. 꾸준히 성장해온 그는 04-05 시즌 CD 테네리페와 코파 델 레이 경기서 레알 마드리드 1군에 데뷔하였다. 하지만 루벤은 주전 경쟁에서 밀려 2년 바이백 조항을 포함하여 헤타페로 이적하였다.
루벤은 만년 중·하위권 팀이었던 헤타페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루이스 아라고네스 감독(당시 스페인 국가대표 감독)은 루벤을 유로 2008 스페인 국가대표 스쿼드에 포함시켰다. 조별 예선에서 골을 넣는 등 눈부신 활약을 보여준 루벤은 바이백 조항에 의하여 헤타페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재영입되었다.
하지만 신은 그에게 장난인지 계획인지 모르겠지만 무심했다. 재능을 주고 건강을 앗아갔다. 08-09 시즌 레알 우니온과 코파 델 레이 경기 도중 공격 상황이 끝난 후 수비 진영으로 돌아가려는 순간 쓰러졌다. 곧바로 경기장 밖으로 실려 나갔다. 팬과 선수 모두 큰 부상이 아니길 기도했지만 하늘은 매정했다. 결국 루벤은 심장 질환으로 인해 시즌 아웃되었다. 결국 심장질환으로 2010년 만 25세의 젊은 나이로 은퇴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지도자 생활로 축구 인생을 이어갔다고 한다.
4. 세비야의 피지 못한 꽃 안토니오 푸에르타
안토니오 푸에르타는 1993년 세비야 FC 유소년팀에 입단한다. 이후 2004년 프로로 데뷔하면서 주전 자리를 거머쥔다. 특히 06-07 시즌 UEFA 컵 결승에서 선발 출전하여 인상 깊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이러한 활약은 아스날, 맨유, 레알 마드리드 등 여러 빅클럽들의 오퍼로 연결되었다.
하지만 07-08 시즌 헤타페와 홈 개막전 경기에서 푸에르타는 갑자기 쓰러졌다. 이후 응급처치를 받고 걸어 나가면서 의식을 찾은 듯했지만 교체 이후 락커룸에 들어가 다시 쓰러졌다.
병원으로 급히 이송된 안토니오 푸에르타는 결국 눈을 뜨지 못했다. 사인은 심장마비. 향년 24세였다. 더 눈물 나게 만드는 것이 있었다. 푸에르타에게 아내가 있었는데 곧 첫째 아이 출산을 앞두고 있었다. 앞으로 찬란한 미래만 올 것만 같았던 푸에르타의 앞날이 잿빛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만약 신이 계신다면 푸에르타를 불러 단 한 번이라도 따뜻하게 안아주시면 좋겠다.
너무 일찍 떠난 푸에르타를 기리기 위해 그가 살았던 동네인 세비야의 네르비온에 '안토니오 푸에르타' 명명된 길을 만들었고, 세비야 FC는 'Trofeo Puerta (푸에르타 컵)을 개최하기 시작했다. 소속팀은 그를 잊지 않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였다.
푸에르타의 영원한 친구는 세리히오 라모스였다. 스페인과 레알 마드리드의 전설인 세르히 라모스는 푸에르타가 국가대표에서 달았던 등번호 15번을 택하며 그를 추모했다. 또 오는 11월 11일 세비야 FC는 보카 주니어스와 '푸에르타 헌정 경기'를 치르며 푸에르타를 잊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