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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스 Sep 21. 2021

추석이 없는 나라에서 추석 쇠기

Life in Canada

한국은 오늘 추석이다. 하지만 캐나다는 월요일이었고, 캐나다군의 실질적인 통수권자를 뽑는 총리 선거날이었다. 나는 여기서 외국인이라 투표권이 없고, 외국이라 추석이 없었다. 이방인이어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이도 저도 아닌 상태다. 그저 여느 날과 똑같이 출근하고 퇴근을 했으며 맥주를 마셨다. 


퇴근 후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통화를 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코로나로 인해 모이지 않고, 제사도 지내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어제 맛있는 저녁을 해 먹고 오늘 근처 월미도에서 칼국수 먹을 겸 드라이브를 갔다고 했다. 현대적인 방법으로 명절을 보낸 것 같았다. 고리타분한 전통에 얽매이지 않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이런 모습을 보니 잘 지내고 있었던 나도 약간의 향수병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잠시지만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인이 모여있는 곳은 잘 모르겠으나, 내가 살고 있는 스쿼미시에서는 추석의 분위기를 전혀 느낄 수 없다. 그나마 조금 느낄 수 있는 부분은 가을 날씨뿐이다. 일하는 도중 쉬는 시간에 잠시 밖으로 나왔다. 가을 냄새를 품은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만은 추석이었다. 바람이 불자 한국 추석 분위기가 떠올랐다. 


이른 아침 제사를 지내고, 가족끼리 옹기종기 모여 식사를 하는 모습. 산소에 인사를 드리러 가는 모습들과 외갓집에서 추석 당일을 마무리하고 다음 날 아점을 먹고 각자 집으로 돌아오는 분위기가 떠올랐다. 바람은 쌀쌀했지만, 마음만은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옆에 있을 때는 그 모든 것들이 소중한 것인지 왜 몰랐을까... 싱숭생숭한 마음이 솟아올랐다.


캐나다에서도 보름달이 떴다. 한국에서처럼 크게 보이진 않았다. 조금은 작은 크기였다. 구름도 많이 껴 잘 보이진 않았지만, 한국에서처럼 소원을 빌기는 충분했다. 퇴근길에 잠시 눈을 감고 소원을 빌었다. 내 소원을 들어주실지는 모르겠지만, 먼 이국땅에서 한 번은 해보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와 한국 만두를 튀겼다. 추석 분위기 살짝 내보려 했지만, 만두로는 부족했다. 그래도 맛은 훌륭했다. 밖을 바라보았다. 은은하게 빛나던 보름달이 구름들 사이로 숨어버렸다. 아까 소원을 빌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석이 없는 나라에서 추석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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