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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스 Sep 22. 2021

맥주캔 보증금이 준 가을

Life in Canada

아침에 느껴지는 찬 바람에 때문에 끌어올리는 이불. 사람들의 옷차림과 달라진 첫인사에서 가을을 느끼는 중이다. 밤 10시까지 지지 않던 해는 점점 짧아져 8시가 되기도 전에 저물고 있다. 시간이 짧아진 만큼 그 아쉬움을 마지막까지 내뿜는 건지 넘어가는 노을이 유독 붉다. 여러모로 계절이 변하는 것을 느끼고 있는 요즘. 바람도 많이 쌀쌀해졌다.


오랜만에 쉬는 날. 아침에 일어나니 산더미처럼 쌓인 맥주 캔을 처리하기로 했다. 캐나다에는 모든 캔과 병에는 컨터이너 디파짓(용기 보증금)이 가격에 포함되어있다. 꼭 술이 아니어도 그냥 음료 캔과 병에도 디파짓이 들어가 있다. 진열대에 나와있는 가격은 컨테이너 디파짓과 주류세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 금액이라, 계산할 때 포함되어 있는 가격을 보여주면 조금 놀랄 수 있다. 하지만 컨테이너 디파짓은 빈 캔을 되팔 때 받을 수 있다. 모든 맥주 캔은 10센트를 돌려받을 수 있다.


퇴근 후 맥주는 나의 소소한 행복이다. 소소한 행복을 매일 즐기다 보니 행복의 잔재들이 집안에 쌓여갔다. 집 앞에 바로 분리수거해서 바로 버릴 수 있지만 언젠가는 저 캔들을 팔아 디파짓을 받고 말 거라는 다짐을 지키기 위해 모아두었다. 하지만 파려고 할 때마다 '아 비도 오는데 다음에 할까?'라는 귀차니즘이 샘솟아 도저히 못 팔게 만들었다. 괜히 애꿎은 날씨 탓이었다. 하지만 오늘 그 귀차니즘을 오늘은 꼭 해결하기 위해 캔들을 들고 집을 나섰다. 날씨가 좋으니까.


그동안 모은 맥주캔


자전거로 5분 거리에 Bottle Depot을 받아주는 곳이 있다. 들어가자마자 찌든 알코올 냄새가 코를 찔렀다. 호텔에서 일할 때 쓰레기장에서 맡았던 냄새와 같았다. 그리고 이곳에서 편의점 단골을 만났다. 항상 내게 말을 걸어주고, 엄청 더웠던 이번 여름 사장에게 에어컨 사달라고 해봐!라고 장난을 쳤던 손님이었다. 여기서 보니 괜히 반가웠다. 바빠 보이던 그와 가볍게 눈인사를 나누고 내가 들고 온 캔을 건네주었다.


그는 날이 시원해졌다고 말하며 내가 준 캔들을 세고 보증금을 돌려주었다. $2.80. 아메리카노 한 잔 값은 벌었다. 소소하게 즐겼던 행복의 잔재들이 돈으로 돌아오니 기분이 묘했다. 은근 쏠쏠한 느낌. 집 근처라 팔기도 쉬웠다. 아직 집에 남아있는 캔들이 많다. 소소하게 비움으로써 하루치 행복을 챙길 수 있었다.


근처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했다. 따뜻한 아메리카와 초가을 공기의 질감. 소소한 행복은 또 다른 잔잔한 행복을 불러왔다.


그동안 바빠 정신없던 살던 나날 중 오랜만에 느끼는 여유. Bottle Depot이 준 선물 같은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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