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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스 Sep 23. 2021

외국인 아재가 준 위로

Life in Canada

오랜만에 이틀 휴무를 받은 날, 날씨는 완벽했다. 하늘이 높고 기분이 좋아지는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 날씨를 좋아한다. 선물 같은 날씨. 이런 날씨는 그냥 놔두면 안 된다. 등산은 지난주에 했으니 오늘은 마운틴 바이크를 하고 싶어졌다. 마르틴에게 문자를 보냈다. 마르틴은 좋다고 하며 시간과 만나는 장소를 내게 문자를 보냈다.


구름이 조금 낀 하늘, 약속 장소에 다다르자 마르틴이 나를 반겨주었다. 오랜만에 내 자전거를 보더니 자전거 체인 오일이 필요할 것 같다고 내게 말했다. 나도 알고 있었지만 어떤 것을 사야 할지 몰라 그냥 방치해두고 있었다. 마르틴이 근처 바이크 샵에 같이 가 체인 오일을 골라주었다. 그리고 오일을 바라는 방법까지 설명해줬다. 선생님 모드가 되었다.


마르틴은 지난번과는 다른 곳을 갈 것이라 했다. 1시간 동안 오르막이고 1시간가량 내리막이라고 했다. 오늘은 쉬운 코스냐고 물었다. 반반이라고 말했다. 1시간 동안 오르막을 오르면서 대화를 나눴다. 부모님과 통화는 어떻게 하냐, 앞으로 얼마나 살 거냐, 등 다양한 질문을 내게 던졌다. 차례대로 대답한 후 천천히 올라갔다. 내가 속도를 내려고 하면 아직 많이 올라가야 하니 천천히 올라가라고 내게 말했다. 


가는 도중 대학교 하나를 지나쳤다. 이름은 Quest University, 산 중턱에 있는 대학교였다. 비포장 길이었다 갑자기 포장도로로 바뀌었다. 많은 가로등과 나무들 그리고 주위의 비싸 보이는 집까지 있었다. 새로운 마을 같았다. 그곳의 집들은 이제 막 지어진 것과 짓고 있는 집들이 많았다. 여기 집들은 얼마냐고 물었다. 마르틴은 $2.5M라고 답했다. 


갑자기 바뀐 포장도로


계속해서 올라가는 도중에 경찰차를 만났다. 오지랖이 넓은 마르틴은 경찰관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경찰관 중 한 명이 우리에게 마운틴 바이크를 가냐고 물었고, 그렇다고 답하자 경찰관은 마르틴에게 작은 부탁을 했다. 


"혹시 자전거를 타다가 15살 정도 돼 보이는 아이를 본다면 신고해주세요. 어제 실종돼서 수색 중입니다. 정신적인 병을 가지고 있는 아이라 더 걱정됩니다. 이름은 니키입니다."


마르틴은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일단 계속 올라갔다. 오르막의 연속이었다. 숨을 헐떡여도 계속 올라갔다. 내리막을 위해 오르는 것 같았다. 우린 중간중간 물을 마시기 위해 잠시 쉬었다. 그늘 속에 머물며 마르틴은 내게 영주권을 따고 나서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물었다. 나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전문 기술학교를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내게


"여기서 배관공 일을 하면 시급 $35은 받을 수 있다. 너도 알겠지만 여긴 월세나 집값이 비싸기 때문에 삶을 유지하려면 최소 시급 $25불은 받아야 생활할 수 있으니 잘 선택해!"라고 답했다. 나는 고맙다고 말했다. 


두 번 정도 만나고 몇 번의 대화를 나누니 조금 친해진 느낌이었다. 마르틴은 누군가와 통화를 하다 지금 친구와 마운틴 바이크를 타고 있다고 말했다. 아버지뻘 나이인 마르틴이 나에게 친구라는 표현을 썼다. 한국에서 자라 온 나에게는 낯선 표현이었지만 신기했다. 나이가 가장 많은 친구가 생겼다.




"아직 나는 제대로 된 직업도 없고, 비자도 확실치 않아. 특히 영어도 문제지. 조금은 걱정돼."


"일단 이런 걱정은 자연스러운 거야. 나도 26살, 27살 때 약 $3000 정도 학자금 대출이 있었어. 하지만 계속 열심히 일하다 보니 35살 즈음 안정적인 생활이 되더라. 너는 아직 젊고 기회가 많아. 충분히 여기서 잘 적응하고 살 수 있을 것 같아. 인생은 산과 비슷해.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거지. 항상 오르막만 있지는 않아. 그냥 즐기면 돼."


낯선 산, 낯선 하늘 아래서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이 건네는 이 따뜻한 말 마디에 감동이 사무쳤다. 마운틴 바이크를 타다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지금까지 쌓인 고민들이 바람을 타고 스쳐갔다. 그의 말이 가령 거짓이라고 해도 젊은 이방인의 삶에 조그마한 위안이 되었다.  


우린 목표한 곳에 올라왔다. 이제 내리막을 즐기면 된다. 오랜만에 코스를 타는 거라 긴장감이 올라왔다. 나에게 몇 가지 팁을 알려주고 그는 먼저 내려갔다. 나는 그를 쫓아가기 바빴다. 지난번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오르막과 내리막의 간격이 좁아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 무서움과 안도감이 계속해서 교차했다. 그 감정들 사이에서 나오는 스릴감이 있었다. 이런 이유로 마운틴 바이크를 타나 싶었다.



그러다 넘어졌다. 모가 나지 않은 둥근돌에 미끄러졌다. 한 번 넘어지니 앞으로 나갈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더 이상 못 가겠어."라고 말하자 마르틴은 "걸어가기에는 너무 멀어. 마운틴 바이크로 타고 내려와야 해."라고 답했다. 단호했다. 천천히 갈 테니 자기가 속도를 내는 곳에서는 속도를 내고 브레이크를 잡는 구간에서는 잡으라고 내게 말했다. 나는 마음을 다잡고 안장에 앉았다. 


천천히 따라갔다. 그를 따라 하다 보니 감이 어느 정도 잡혔다. 브레이크를 잡는 법과 속도를 내는 법. 멈춰야 할 때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를 배웠다. 우여곡절 끝에 지상으로 내려왔다. 아무리 멀어 보여도 달리다 보면 도착한다. 평평한 도로를 보고 안도감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르틴은 잘했다고 말하며 주먹을 내게 내밀었다. 나는 그 주먹을 치며 이제야 웃을 수 있었다. 


마르틴은 이제 실종된 아이를 찾아보자고 내게 말했다. 경찰이 말해준 예상 실종 위치는 다행히 쉬운 코스의 산이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내리막을 내려가다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었다. 새로운 산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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