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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스 Oct 23. 2021

엄마에게 화분을

Life in Canada

캐내다 오기 전, 엄마에게 화분을 선물해드렸다. 한동안 볼 수 없으니 조금은 의미 있는 선물을 해드리고 싶었다. 동생한테 물어봤다. 엄마가 요즘 화분 모으는 것에 취미를 가진 것 같으니 화분이 어떠냐고 내게 말했다. 화분. 의미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최근까지 할머니와 같이 살았다. 엄마는 시어머니를 모셨던 것. 과거형으로 끝나는 이유는 현재 같이 살진 않는다. 내가 캐나다에 오기 몇 달 전, 엄마는 분가를 했다. 나와 할머니는 원래 살던 집에 살았고, 엄마와 아빠 그리고 동생은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갔다. 엄마는 최근까지 모시고 살았으니 햇수로 28년을 함께 했다.


엄마는 시어머니와 같이 살다 보니 물건을 마음대로 사실 수 없으셨다. 물건을 사 오기만 하면 돈을 헤프게 쓴다는 핀잔을 듣곤 했다. 심지어 필요한 물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말들을 들은 날들도 있었다. 나와 동생이 기억을 모을 수 있는 나이가 된 후에도 할머니는 함부로 돈을 쓰지 못하겠다. 무엇인가 사 오면 "또 뭐 샀냐!" "아낄 줄 알아야 산다." 등 새로운 물건에 대한 기대, 기쁨을 꺾으시곤 했다. 어느 순간 엄마는 물건을 사면 베란다에 물건을 숨기기 바빴었다.


그렇다고 우리 할머니께서 아침 드라마에 나오는 극성 시어머니의 모습은 아니시다. 힘들게 사신 할머니의 지난 삶을 알면 저렇게 아끼시는 모습이 이해가 된다. 하지만 엄마는 종종 그런 모습들이 스트레스로 작용했다. 할머니께서 편하게 해 주신다고 해도 편하지 않으셨다. 시어머니는 친정엄마가 될 수 없었다.


엄마는 처음으로 자기만의 공간이 생겼다. 물론 전세이긴 하지만 물건을 사도 더 이상 잔소리하는 사람이 없다. 그리고 새롭게 생긴 취미가 있었는데 화분을 모으는 것이었다. 예쁜 화분들을 모으시고 싶으셨나 보다.


엄마의 화분 거치대


내가 캐나다로 오기 전, 엄마는 화분 거치대를 사셨다. 거실 한 공간에 어울릴 만한 거치대였다. 이제 막 산 터라 몇 군대 자리가 비어있었다. 그중 하나의 자리를 내가 채워드리고 싶었다. 당분간 내가 옆에 없으니 그 화분이라도 옆에 있으면 하는 바람이었고 내 빈자리를 조금이나마 채워드리는 마음이었다.


동네에 작은 꽃집을 갔다. 물을 자주 안 줘도 잘 죽지 않은 화분으로 골랐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이따금 내가 보고 싶은 날에 주었으면 하는 마음. 캐나다에 와서 화분 잘 있냐는 연락에 최근에 화분에 있는 꽃의 안부를 물었다. 엄마는 내게 말했다.


"거의 다 죽을 뻔한 거 최근에 다시 살렸어."

"엥? 내가 준 화분인데... 너무 관리를 안 하는 거 아니야??"

"그래도 네가 준 화분이라 살린 거지. 다른 화분이었으면 이렇게까지 안 했을 거야."


엄마에게 드리고 온 화분


그래도 살려줘서 고맙다고 해야 하나... 마땅한 대답이 없어 그냥 웃었다. 그래도 꽃이 피고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였다. 나도 그렇게 엄마에게 꽃 피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24살 어린 나이에 시집을 오셨다. 그리고 25살에 나를 낳으셨다. 내가 그 나이를 지나고 보니 참으로 어린 나이라고 느낀다. 애가 아기를 낳은 느낌. 하고 싶은 것도 많은 나이에 얼마나 힘들었을까. 덕분에 나는 고요한 하늘에 걸린 보름달처럼 평온할 수 있었고 원하는 것들을 하며 살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엄마는 나를 위해 청춘을 소멸시키며 거름이 되어주셨는데, 정작 내가 꽃을 피우지 못하면 어쩌지?라는 생각. 화분에 피워있던 꽃을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동생에게 카톡이 왔다. 엄마가 출근하다 내 뒷모습과 닮은 어느 남자를 보고 눈물을 훔치셨다는 내용이었다. 괜히 뭉클해졌다. 마침 주말이어서 엄마 생각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엄마의 주변 소리가 시끄러웠다. 아빠와 캠핑장을 간 것. 아들 뒷모습을 닮은 사람을 보고 눈물을 흘리시지만, 주말에 캠핑장을 가는 이런 엄마. 나는 이런 엄마가 너무 좋다. 내 생각도 하지만 본인 인생을 즐기는 것 같아서.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나아가셨으면 좋겠다.




출근길에 우연히 눈에 띈 꽃 하나. 땅에 꽃잎들이 떨어져 있었다. 그 꽃을 보니 엄마 생각이 났다. 그리고 공항에서 내 모습이 저 꽃잎이었을까? 하는 생각.


꽃잎을 떠나보내는 꽃의 마음은 아마 엄마만이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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