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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Sep 17. 2023

맥주는 남자들이 마시는 술!

난 술을 좋아한다.

그런데 아주 잘, 많이 마시지는 못한다.

술 중에서도 맥주랑 화이트와인을 좋아한다.

그런데 와인 마신 뒤에 찾아오는 갈증과 동반되는 두통이 불쾌하고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해서 요즘은 주말에 맥주 한 두 캔 마시는 것으로 술에 대한 나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다.

영국은 음식은 잘 모르겠지만 술하나는 기가 막히게 만드는 것 같다. 그리고 한국에 비해 저렴하게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와인이 더 이상 프랑스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었다. 영국의 스파클링 와이너리가 남쪽으로 점점 더 확대되어가고 있다. 위스키를 만든 나라답게 아주 고품질의 와인을 만들어 내고 있고 가격 또한 수입한 프랑스 와인보다 비싸다.


에일맥주도 찾아가는 펍마다 파는 에일이 겹치는 경우가 많이 없다. 그만큼 지역 양조장도 많고 맛있는 맥주도 많다. 남편과 가끔 펍에 가면 그곳에서 추천하는 에일을 마신다. 와인처럼 아주 차갑게 마시지 않는 펍의 에일은 탄산이 많이 없으면서 특유의 단맛과 홉의 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게 너무 맛있다.


그런데 펍에 갔을 때 나처럼 맥주를 마시는 여자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영국 여자들은 대부분 화이트와인이나 진 앤 토닉을 마신다. 가족끼리 외식을 나가면 내가 맥주 1 파인트(570ml)를 맛나게 마시는걸 영국 시댁 식구들은 특이하게 바라본다. 생각해 보면 그 많은 양의 술을 벌컥벌컥 마시는 게 우아하지 않다고 보는 것 같다.


작은 고모네 집에서 양가 가족들 파티를 일 년에 두세 번 한다. 그럼 보통 여섯 가정이 모이는데 그중에 맥주를 마시는 여인은 하나도 없다. 여인들은 대부분 샴페인, 와이트와인 아니면 진 앤 토닉을 마신다. 난 흑맥주 기네스도 좋아한다. 내가 그런 걸 꺼내놓고 마시면 다들 대놓고 뭐라 하지는 않지만 신기하게 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왜, 이렇게 대부분의 영국 여인네들은 맥주를 마시지 않는 걸까? 궁금해서 찾아보았더니 나의 예감이 대부분 맞았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어떤 기관에서 한 조사에 따르면,

맥주에 대한 이미지나 광고 자체가 남자들이 술집에서 벌컥벌컥 들이켜는 모습이 대부분이고,

맥주를 마시는 여자들은 전형적으로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스타일의 여자들로서 보편적으로 덜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으며,

가스가 차는 느낌과 맥주를 마시고 난 뒤에 트림을 유발하는 것이 여성스럽지 않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500ml가 넘는 많은 양을 들이켜는 것보다는 좀 더 우아한 잔에 적게 따라 마시는 것이 더 여성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들이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영국에 살면서 영국 여성들이 한국의 여성들보다 더 구시대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을 할 때가 종종 있다. 펍에서 당당하게 맥주를 시켜 마시고 가끔은 정말 남자들이나 마시는 흑맥주까지 시켜서 마시는 조그만 동양여자인 나에 대한 의외의 시선들을 느낄 때도 그렇지만, 쓰레기통을 내놓는 날 우리 동네도 대부분 남자들이 내놓지 여자들은 쓰레기통 손잡이에 손을 거의 대지 않는다. 물론 각 집안마다 분담하는 것들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동네만 해도 여자들이 쓰레기통을 내다 놓는 것은 거의 본 적이 없다.


크리스마스 디너 때 칠면조를 구우면 굽는 것은 여자들이 대부분 하지만 테이블에 세팅해 놓고 자르는 것은 남자들이 한다. 절대로 칠면조 요리가 질겨서 남자의 힘이 아니면 도저히 잘라지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요리는 여자들이 해놓고 모두가 테이블에 앉았을 때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칠면조를 잘라서 각자의 테이블에 분배하는 것은 남자의 몫이다.


물론,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소도시의 외곽이고 영국에 와서 산 5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목격한 것이라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은 한국에 비해 여성과 남성의 역할분담이 아주 먼 옛날에서 변한 게 별로 없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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