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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Aug 03. 2023

다시 Romina(로미나)

이틀 동안 학교 디자인테크놀로지(DT)과 이사를 도와주게 되었다.

로미나도 같이했다.

로미나는 키우는 윌로우라는 개를 혼자 오래 둘 수 없어서 오전만 일하고 가야 한다.


이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복사실에서 7학년부터 10학년까지 총 세 과목의 booklet을 200부씩 복사하는 일이다. 일단 복사기를 각각 세팅해 놓으면 딱히 할 일이 없어서 로미나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로미나에게서 직접 본인이 겪고 있는 불안증에 대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6개월 동안 사무실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기간 동안 어느 정도는 불안증과 공황장애를 극복을 했다고 했다.

그리고 마침 사무실에 자리 하나가 났는데 모두들 지원해 보라고 했지만 본인은 전화 공포증이 있어 민원해결이 안 되니 고사했다고 했다.


전화를 받았을 때 예상치 못한 상황이 생기면 바로 공황장애가 올 수 있어서 자원봉사를 하는 기간에도 전화는 못 받겠다고 미리 선언을 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일부러 학교에서는 다른 사무실에 있는 사람들에게 로미나에게 전화를 하라고 시키고 로미나가 전화받는 훈련을 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었는데 여전히 불특정다수로 부터 걸려오는 전화 민원에는 자신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아무래도 민원을 상대하는 사무실일은 맞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시험감독이야 학생들만 상대하면 되고 또 경험 있는 감독관들과 함께하니 그나마 로미나가 해낼 수 있는 일인 것이다.


로미나는 운전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버스나 기차와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다고 했다. 걷거나 남편이 운전하는 차만 탈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고향인 이탈리아를 다녀온 지 너무 오래되었다고 말하며 눈가가 촉촉해진다.


다행히 지금 학교가 로미나 집에서 20분 정도의 거리로 걸어 다니기에 아주 적합한 위치에 있다.

로미나는 집에만 있으라면 세상 제일 좋다고 했다. 집에 있을 때 가장 안정감을 느낀다고.

하지만 남편의 외벌이로는 브렉스트 이후에 많이 오른 물가를 감당하기 힘들다고 했다. 그리고 또 본인에게도 집에만 있는 것이 정답은 아닐 것 같아서 용기를 내어 학교로 나오게 되었다고 했다.


며칠 DT과목 실습실 이사를 도우며 본인은 DT(의상디자인+상품디자인+식품영양) 실습실에서 지내라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본인이 좋아하는 요리와 각종 바느질, 공예등을 다루다 보니 아주 행복해했다. 그래서 현재 3명의 조교가 일을 하고 있는데 혹시 자리가 나면 그곳을 공략해 보자고 이야기했다. 내가 학교에 있으면서 자리가 나면 제일 먼저 연락을 해주기로 했다. 로미나의 얼굴이 참 맑고 밝게 빛나는 것 같았다.


로미나는 다른 영국사람들과 달리 짐을 옮길 때도 가능한 많이 옮기려 하고, 일을 가려하지 않는다. 남들보다 자기가 일을 더 많이 하면 했지 덜하려고 몸을 사리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까지 한다. 그래서 나는 같이 일하면서,

'Romina, don't take too much at one time.

Romina, that`s too heavy

Romina, you don't have to do this, others will do it later......'

그러면 한결같은 반응이 온다. 아니야 안 무거워. 아니야 내가 하지 뭐......


나와 시험기간이 아니면 만날 일이 거의 없다. 나는 우리 집 근처에 밤나무가 많다고 가을에 같이 밤이나 줍자고 하니 너무 좋다고 환하게 웃었다.


작년 11월부터 시험 감독을 하며 그동안 10명도 넘는 감독관들을 만났지만 로미나가 나와 핸드폰번호를 공유한 유일한 사람이다. 아무도 먼저 핸드폰 번호를 공유하려 하지 않는다. 가끔은 서로 연락해야 할 일이 있는데도 학교 계정 이메일 아니면 연락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로미나에게서는 따뜻함이 느껴진다. 그래서 학교에서도 자원봉사를 하는 기간 동안 그런 로미나에게 반한 사람이 많은 것 같다. 휴게실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으면 다들 로미나 옆에 바짝 다가와 너무 반갑게 인사를 한다. 이런 따뜻함들이 모여 로미나가 학교에 자리를 잡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라본다.


https://brunch.co.kr/@limsoopool/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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