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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Jul 22. 2023

볶음면에 굴소스는 비밀

남편의 최애 메뉴는 중국식 볶음면(차오미엔)이다. 파(많이)와 저민 생강을 기름에 볶다가 생면을 섞어 같이 볶고 간장+굴소스+참기름+라오간마칠리크리스피오일을 넣고 볶아내면 된다.


얼마 전에 호주에 사는 일본 요리사가 라오간마칠리오일을 넣는 것을 보고 시내 아시안마트에 가서 공수해다 넣어봤는데 세상에!!!!!! 이거 몰랐으면 어쩔 뻔했나 할 정도로 감칠맛(msg가 들어가 있음)이 장난이 아니다. 게다가 중국 사천고추가 조금 들어가 아주 맵지는 않지만 혀를 자극하면서 튀긴 대두와 바삭한 고춧가루가 아주 볶음면을 한 층 업그레이드 시켜주는 최상의 식자재이다. 볶음밥에도 마찬가지로 넣어서 볶아 먹으면 정말 맛있다.


남편은 일주일에 한 번은 무조건 이 볶음면을 해달라고 한다. 아이들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 그동안 남편만 해주다가 오늘은 다 같이 먹으려고 양을 많이 해서 아이들에게도 주었더니 너무 맛있다고 싹싹 긁어먹는다. 그런데 식사 중에 눈치 없는 첫째가 한마디 한다.


"엄마, 이거 정말 맛있다. 맛있어. 근데 굴소스 넣었어?"

"아니,  B가 먹는데 무슨 굴소스? 안 넣었어"

"에이, 볶음면에 굴소스 빠지면 안 되는데..."


나는 속으로 '아이고 이 답답아~! 눈치도 없이 그걸 왜 자꾸 들먹이냐... 당연히 넣었지... 넣었어도 넣은 줄도 모르고 먹는 것이 뭔 굴소스 타령이야!' 

그런 내 마음을 읽은 건지...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상황파악이 되었는지 짖꿎은 웃음을 지으며 싹싹 긁어먹는다.


B는 굴소스가 들어간 음식도 먹지 않는다. 내가 슈퍼에서 식물성굴소스라고 잘못 보고 산 굴소스로 그동안 요리에 넣어가며 이거 식물성굴소스니 먹어도 된다고 안심을 시켰는데, 어느 날 B가 냉장고에서 굴소스 병을 꺼내 재료를 읽어보더니,

"엄마, 여기 그 어디에도 식물성이란 말이 없는데"

"아니야, 그거 식물성 맞아. 엄마는 그렇게 알고 있는데?"

"엄마, 너무해! 나 이제 이거 넣은 음식 안 먹어!"


그 뒤로 웬만해서는 굴소스도 요리에 넣지 않으려고 하는데 솔직히 볶음면에 굴소스가 빠지면 맛이 덜한 건 확실하다. B를 속여가며 오늘 볶음면을 만들어 먹이고 난 뒤 왠지 모를 죄책감이 몰려온다. 어린것이 다른 생명들을 생각해서 안 먹겠다고 하는데 엄마라는 자가 자기 맛있게 먹으려고 애를 속이기나 하고 말이다.

다음번 볶음면을 만들 때는 큰아이를 속여봐야겠다. 넣었다고 하고 넣지 말고 해줘 봐야겠다. 어차피 넣어도 넣은 줄 모르는 아이이니... 차라리 큰아이를 속이는 게 죄책감이 훨씬 덜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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