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n Jul 20. 2023

채식 아이 도시락 변천사

내가 학교 다닐 때 엄마는 늘 일에 치여 한 번도 도시락을 정성껏 싸주신 적이 없다. 반찬과 밥을 해놓으시고 출근을 하면 우리는 각자 도시락에 밥을 푸고 반찬을 담아야 했었다. 그래서 나는 우리 아이들 도시락은 가능하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으로 정성껏 싸주고 싶다.


B는 학교 식당에서 사 먹을 수 있는 메뉴도 한정적이라서 무조건 거의 매일 도시락을 싸야 한다.


너무 튀는 음식은 싫어한다. 그리고 야채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토마토도 좋아하지 않는다. 유일하게 질리지 않고 먹는 야채는 오이. 그래서 샌드위치를 주로 싸가는데 옵션이 많지 않다 보니 어느 정도 시간이 되면 질려서 싸가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방학이 더 기다려지고 방학 때는 도시락 메뉴는 절대 먹이지 않는다. 


마마이트 오이 샌드위치

빵에 버터를 바르고 채소액기스조청 같은 마마이트를 바르고 그 위에 오이를 얇게 썰어 깐다. 맛은 짭짤하고 오이 씹는 맛이 괜찮은 편인데.... 나라면 정말 배고프지 않으면 먹지 않을 음식이다. 이건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싸간다. 정말 쌀 것 없을 때 보험처럼 싸주는 샌드위치이다. 


어니언피클치즈 샌드위치

시누들과 피크닉을 갔는데 작은 시누가 싸 온 샌드위치가 어니언피클치즈 샌드위치이다. 그래서 B 보고 먹어보라고 하니 맛있단다. 아~싸! 피크닉에서 돌아오는 길 슈퍼에 들러 피클을 샀다. 양파, 당근등을 아주 작게 잘라서 보리 엿기름과 이것저것 넣고 짭조름하게 만든 피클이다. 빵에 버터를 바르고 피클을 얇게 바른 뒤 그 위에 체다치즈를 갈아서 올리면 끝이다. 영국사람들에게는 흔한 샌드위치인데 이제야 알았다며 좋아했는데 며칠 싸가더니 또 안 먹겠단다. 피클 반 병도 안 먹고....


레드페스토 바게트 샌드위치

사워도우 바게트를 반갈라 버터와 토마토페스토를 바르고 그 안에 체다치즈를 갈아 넣고 부드러운 샐러드용 상추를 잔뜩 넣는다. 이건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한 번 해줬는데 너무 맛있다고 해서 다행이다 싶어 바게트를 잔뜩 사다가 한 번 싸줄 크기로 잘라 냉동실에 넣어놓고 페스토도 몇 병 사다 놨는데... 세 번 싸가고 이제 먹고 싶지 않다고 했다.


토스트 샌드위치

토스트 기계에 빵을 얹고, 버터를 바르고, 바질 또는 토마토 페스토를 얹고, 옥수수(캔)를 펴서 넣고 마지막으로 치즈 한 장 올린 뒤 버터 바른 빵을 위에 얹어 토스트샌드위치 기계에 바삭하게 눌러 익혀 싸줬는데 첫날 반응이 너무 좋았다. 학교에서도 아이들이 넌 참 럭키하다며 부러워했다고 했다. 그런데 3일 싸가고는 싸주지 말라한다. 차가워져 맛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가방 전체에서 냄새가 난다고 싫단다. 


뇨끼 튀김+떡꼬치소스

뇨끼를 기름 잔뜩 두르고 튀기듯이 앞뒤 노릇하게 하여 고추장+메이플시럽+간장을 넣고 파스타 버무리듯이 프라이팬에 볶아 낸 뒤 참깨 잔뜩 뿌려 싸주면 큰아이는 너무 좋아하는데 B는 몇 번 싸가더니 그것도 싫단다. 역시 가방에서 냄새가 난다는 이유이다. 하루종일 가방을 짊어지고 이 교실 저 교실 돌아다녀야 하기 때문에 가방을 열 때마다 나는 도시락 냄새가 신경이 쓰이는 것은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큰아이는 도시락을 보통 아침에 가서 일찍 까먹기 때문에 하루종일 가방에서 냄새날 일이 없어서 군말이 없는 듯하다.


크림치즈 오이 베이글 샌드위치

베이클 위에 크림치즈를 잔뜩 바르고 그 위에 오이를 잘라서 깔아주면 끝이다. 풍미를 위해 통후추를 갈아 조금 뿌려준다. 이 샌드위치를 싸갈 때는 아이스팩을 도시락 가방에 잔뜩 넣어 점심시간에도 크림치즈가 차갑게 유지되어야 하는 게 관건이다. 이건 정말 맛있다고 한동안 두 개씩 싸갔었다. 그러다 지난주.... 이제 좀 질릴 것 같아...라는 말을 조용히 내뱉었다.


바질페스토 파스타

학교 식당에 바질페스토 파스타를 종이컵에 담아 파는 것을 보고 도시락에 싸주겠다고 했더니 한번 해달라고 해서 펜네 파스타를 삶아서 바질 페스토를 잔뜩 넣고 버무려 도시락에 싸줬더니 집에 와서 엄청 맛있었다고 또 싸달라고 한다.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이유는 자꾸만 질려가는 샌드위치 다음으로 대안이 없을 줄 알았는데 대안을 찾은 것이 다행이라 더 그렇게 반응하는 것이리라.


에그마요네즈 샌드위치

B가 좋아하는 샌드위치이다. 만들기도 쉽다. 전날 계란 삶아서 냉장고에 넣어놨다가 아침에 으깬 계란에 머스터드, 마요네즈, 참깨 조금 넣고 섞어서 빵사이에 넣어 싸면 그만이다. 보통 피크닉 갈 때 많이 싸는데 도시락으로는 절대 안 가져가려 한다. 계란 특유의 냄새가 가방을 열 때마다 강하게 난다고 싫단다. 다른 아이들은 잘도 싸가는 에그마요샌드위치인데 참 냄새나는 것에 유별나게 예민하다.


야채크로켓

빵반죽을 따로 하고, 찐 감자를 으깨고 양파와 당근을 얇게 썰어 볶은 것과 체다치즈, 옥수수, 완두콩을 섞어 소를 만든다. 반죽을 50g씩 소분하여 찐빵 만들듯이 반죽 안에 소를 넣고 빚어서 납작하게 한 뒤 계란을 바르고 빵가루를 묻혀 오븐 180도에 20분 정도 구우면 끝이다. 보통 한 번에 20개 정도 만들어서 냉동실에 넣어두고 아침에 도시락 통에 하나씩 넣어서 싸가면 된다. 굳이 아침에 해동을 시킬 필요가 없다. 먹을 때 즈음이면 다 해동이 되어 있다. 이 크로켓은 내가 보통 출근할 때 하나씩 싸가기 편해서 만들어두는데 가끔 이것도 싸가지고 가는데 그렇게 선호하지는 않는다. 이유는 집에서 토스터에 넣어 바삭하게 먹으면 맛있는데 싸가지고 가면 눅눅하다는 것이다.


야채볶음밥

아주 가끔 보온도시락에 파, 계란만 넣고 볶음밥을 만든다. 강황가루와 파프리카가루를 넣어 풍미를 살리고 간장으로 간을 한다. 이때 쌀은 보통 동남아이사에서 많이 먹는 끈기 없는 쌀을 쓴다. 가을 겨울에 가끔 싸주는데 보온도시락이 밀봉이 잘되어 그런지 냄새에 대한 불평은 별로 하지 않아 다행이다.


연구를 해봐도 아이디어가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채식주의자라지만 먹는 채소와 과일류가 많지 않다 보니 더 쉽지 않다. 이제 10개월이 다 되어간다. 단 한 번도 흔들림 없이 그 어떤 육식도 거부하고 있는 아이가 대견하고 존경스럽긴 하지만 그만큼 나의 머리는 늘 새로운 레시피를 찾아 헤매야 하고, B는 끊임없이 맛과 타협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일 년이 지나고 나면 안정기에 접어들지 두고 봐야 할 일이다. 


이전 20화 새조개 채집 방해작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