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n Jul 03. 2023

가죽신발 거부!

B의 발 사이즈가 커져서 신발을 사러 시내에 나갔다.

보통 교복에는 검은색 단화를 신는다.

신발 가게에 들어가자마자 B가 이제 가죽신발은 신지 않겠다고 신발 둘러보기를 거부했다.

하지만 선택권이 없다. 지금 신고 있는 신발은 발가락이 아파 더 이상 신을 수가 없다.

우리가 보통 가는 신발가게인 Clarks의 학생신발 코너에는 가죽신발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일단 이번만 가죽신발을 사자고 사정사정을 해서 결국은 사가지고 왔다.

단화를 신고 학교에 다녀와서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이 신발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투정을 늘어놓는다.


신발이 너무 투박해!

신발이 너무 무거워서 달리기를 할 수가 없어!

내 발보다 너무 커 보여!


그래도 신발을 여러 개 사서 신길 수 없는 처지라 듣는 둥 마는 둥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두 달 정도가 지났다.

오늘 아침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며 신발 얘기를 꺼냈다.


"그 신발이 아직도 그렇게 맘에 안 들어? 여전히 불편해?"


"불편하진 않아. 익숙해졌어. 근데 이 신발을 신고 있으면 마음이 늘 안 편해. 나 다음엔 가죽으로 된 거 절대 안 살 거야!"


"알았어. 엄마가 알아볼게. 천으로 된 검은단화가 있는지 찾아볼게. 그런 거 신고 다니는 학생들 봤어. 그리고 찾아보니 비건 슈즈 파는데도 있더라"


"응. 엄마. 나 신발만 보면 마음이 너무 불편해."


B는 마음으로 빌 거다. '내 발이 빨리 자라서 이 신발을 더 이상 신지 않게 해 주세요!!!'라고.


B는 비건도 아니고 유제품을 먹기 때문에 완전한 채식주의자도 아니다.  단지 동물을 도살해서 얻은 음식을 먹지 않고 가죽제품을 쓰지 않겠다는 거다. B가 육류, 생선류를 먹지 않은지 10개월째이다. 가끔은 자신이 좋아했던 고기 음식이 생각난다고 아련하게 말한 것 말고는 흔들림 없이 지켜오고 있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먹고 싶지도 않고 자신의 입으로 그런 음식을 가져가는 것을 상상할 수도 없다고 했다.


베이글에 크림치즈, 훈제연어와 오이를 넣고 만든 샌드위치를 언니랑 같이 자주 해 먹었는데 이제 B는 연어만 쏙 빼고 크림치즈와 오이만 넣고 먹는다. 그래도 맛있다고 잘 먹는다. 맘이 편해서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 같다.


B는 체질적으로 채식이 필요한 아이도, 종교적으로 고기를 가려먹어야 하는 아이도 아니다. 단지 맘이 불편해서 채식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농장에서 뛰어놀고 있는 행복한 돼지를 봐서가 아니고 다큐에서 본 도살장의 이미지 때문만도 아니다. 그동안 수도 없이 읽어왔던 동물주제의 책들과 다큐들을 보면서 마음에 차곡차곡 쌓였던 죄책감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어 채식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 아무리 봐도 B의 마음은 오래도록 변할 것 같지 않다.


                     

이전 18화 고사리김밥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