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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Aug 04. 2023

레닛(Rennet) 치즈

시어머님이 근처에 와계셔서 저녁에 간단하게 피자나 같이 먹자고 집으로 오시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슈퍼에서 마게리타피자, 치즈피자, 야채토핑피자 이렇게 세 종류를 사가지고 왔다. 다들 배가 고프다고 해서 나는 어머님이 좋아하시는 콜드슬로(양배추, 당근, 양파, 비트, 사과에 마요네즈와 레몬즙을 넣어 버무린 샐러드)를 만들고 피자를 구워 모두 식탁에 둘러앉았다.


"엄마, 이거 다 내가 먹어도 되는 피자지?"

"응, 모두 베지테리언이야. 먹어 먹어"

그런데 갑자기 B가 부엌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돌아와서

"엄마, 이거 Rennet치즈라잖아. 그럼 베지테리언이 아니지!"

"레닛이 뭐야? 치즈면 다 우유로 그냥 만드는 거 아니야?"

"아니야, 이거 소위장에서 효소 긁어서 뭐 만드는 거래. 그럼 내가 먹으면 안 되는 거지."


아이고... 이제 치즈도 어떻게 만든 건지 잘 읽어보고 사야 하다니...

레닛은 포유류의 위장에 들어 있는 효소 복합체이다. 치즈를 만들 때는 어린 소의 위장에서 효소를 긁어내서 딱딱한 치즈를 만들 때 빨리 굳히는 효소로 많이들 쓰인다. 이 효소를 쓰지 않고 치즈를 자연 응고시키는 데는 시간이 매우 많이 걸린다.


B는 나를 믿지 못해 먹어 버릇하지 않은 음식이면 휴지통을 뒤져서라도 포장지를 꺼내서 다 읽어보고 의심 나면 구글에서 찾아보고, 그런 과정을 다 거쳐야 입으로 가져간다.


그래서 우리가 사 먹는 체다, 모차렐라, 파마산 치즈의 성분들을 찾아보게 되었다. 단순히 치즈는 우유로만 만드는 거라 먹여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포장에 V(Suitable for Vegitarian)이라 적히지 않은 치즈가 많았다. 특히 딱딱한 치즈일수록 레닛을 사용하는 줄을 몰랐던 거다.


그러다가 우리가 자주 가는 치즈농장(B가 채식주의자가 되기로 맘먹게 된 결정적인 주인공, 돼지 세 마리가 사는 농장)의 웹사이트를 급하게 들어가 보았다. 들어가 성분을 보니... NOT SUITABLE FOR VEGITARIAN이라고 적혀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B에게 할 말이 있다고 하고 앞에 앉혀놓고 레닛에 대해서 다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레닛 있잖아. 엄마가 좀 더 찾아봤어. 그 윈터데일팜 치즈 있잖아... 거기도 레닛을 쓰나 봐.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치즈에 그 레닛을 쓰는 것 같아. 하지만 네가 기억해야 할 건 레닛을 얻기 위해 소를 잡지는 않는다는 거야. 고기를 얻기 위해 잡은 소의 어차피 버려질 위장에서 효소만 긁어낸 거야. 고기도 아니야. 그냥 효소야. "

"엄마, 핸드폰 줘봐!"

그리곤 뭔가를 찾아보고는 눈가가 빨개지며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엄마, 어린 소래. 어린 소를 잡아서 레닛을 긁어낸다고! "

"알아, 하지만 어차피 먹을라고 잡는 소에서 긁어내는 거지 안 그럼 그냥 버려지는 거야!"

"엄마는 내 마음을 몰라. 정말 몰라"

"엄마도 속상한데 해결책은 일단 엄마가 사는 치즈는 모두 레닛으로 안 만든 치즈를 살게. 근데 네가 어디 초대받아서 나가거나 외식을 할 때 치즈 없는 식단은 찾기 힘든데 그때마다 그 치즈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확인하긴 힘들잖아. 밖에선 그냥 먹으라고. 집에선 엄마가 철저하게 보고 사 올게."

"......"

아무 말이 없이 울기만 한다. 그리고 구글에서 이것저것 한참을 찾아보다가...

"할루미도, 까망베르도, 파마산도... 다 레닛으로 만든다고!"

그래서 나는 내가 했던 말을 반복하며 B에게 대답을 얻어냈다.

"네가 스무 살이 되면 더 이상 성장을 하지 않아도 될 때가 되면 네 맘대로 해. 무엇을 먹든 엄마가 그때는 관여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지금 한창 크고 있는데 계란도, 치즈도 제한을 두면 안 될 것 같아. 먹자. 그냥. 알았지?"

"알았어!"


 앞으로는 B의 불호령이 떨어지지 않게 초록색 V자가 보이는 치즈만 사도록 주의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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