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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Sep 02. 2023

개학준비-Inset Day

다음 주 월요일 2023/2024 첫 학기 개학을 앞두고 금요일에 교직원들만 출근하는 인셋데이가 있었다. 인셋데이에는 개학 전에 학교에서 준비한 연수프로그램에 참가하고 기타 학교의 변경된 정책이나 사항들을 공지받고 마지막으로는 각 담당 학과나 부서별 회의를 하고 하루를 마친다. 마찬가지로 8시 30분에 시작해서 3시 30분에 끝난다.


나에게는 커버교사로는 첫 출근 날이었다.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새로운 명찰을 받고, 커버매니저가 미리 보내준 스케줄표대로 강당으로 가서 노트북을 인수했다. 이 학교는 전교생이 크롬북으로 수업을 하고 교사들도 모두 온라인으로 출석을 확인하며 모든 학교의 공지사항은 수시로 이메일로 전달되거나 구글드라이브 공유메시지를 보내서 그곳에서 다 확인하게 되어있다.


강당에 가니 시험감독관들이 제일 먼저 와있었다. 교장이 미리 준비한 커피와 음료를 시험 감독관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 반가워 인사를 나누다가 갑자기 주임시험감독관인 리처드가 아주 장난스러운 얼굴로 다가오더니,

"뭐야, 커버교사라니... 넌 정말 바보천치야! 그런 일에 왜 뛰어들어!"

"나도 알아, 나 바보인 거.... 근데 그거 알아? 내 남편은 이미 받지도 않은 내 3년 치 월급을 가지고 캐러반을 사려고 궁리 중에 있어. 3년은 일해야 해."

"당연하지. 넌 이제 죽었어. ㅋㅋ"

미소가 만연한 리처드와 이렇게 농담을 주고받고 쌍둥이 아들 대입시험 성적과 어떤 대학에 입학했는지를 물으니 옥스퍼드대학을 목표로 했었는데 성적이 생각보다 많이 잘 안 나와서 쉐필드대학에 갔다고 했다. 쉐필드 대학도 아주 좋은 대학이라며 우린 그렇게 대화를 마무리했다.


연수 첫 번째 시간은 이 학교의 GCSE(중등교육검정시험) 결과와 A-LEVEL(대입시험) 결과에 대한 것이었다. 전국 평균치보다는 좀 더 나은 결과들을 가져왔지만 코로나이전 수치로 돌아가려면 아직도 시간이 필요한 듯했다. 이번 이 학교에서는 캠브리지 대학에 4명이 입학했다고 했다.  


그다음엔 SEND(Children with special educational needs and disabilities:자폐스펙트럼, ADHD, 뇌전증, 난독증, 뚜렛, 틱, 불안장애 등등을 겪고 있어 학교에서 특별한 주의가 필요한 학생들을 말하며 이러한 학생들의 경우 향후 시험을 볼 때 이루어져야 하는 특별한 조치까지 이미 세팅을 해 둔다. ) 학생들에 대한 공지가 있었다. 신입생 및 재학생 가운데 변경사항이 있는 학생들의 명단과 특히 주의해야 할 것들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이 모든 사항들은 출석부 명단에 다른 색으로 표시가 되어있는 이름들을 클릭하면 볼 수 있다.


피젯토이 가지고 있을 수 있게 하라
질문을 하지 마라
잠깐 밖에 나가 있겠다고 하면 내보내 줘라
어떤 어떤 증상들을 보이면 학생지원센터에 연락하라
경쟁을 부추기는 말들을 걸지 않도록 하라
불안을 조장하는 말들을 하지 말도록 하라
어떤 학생과는 아주 멀리 떨어져 앉도록 자리배치를 하라 등등으로 한 학생당 거의 두 페이지에 해당하는 특별 사항 및 주의사항이 첨부되어 있다.


오전 교육을 마치고 학교식당에서 전 직원이 모여 식사를 했다. 인셋데이만 학교에서 교직원에게 무료 음식을 제공한다. 메뉴는 햄버거, 핫도그, 샐러드였다. 채식버전도 같이 나란히 준비되어 있었다.


점심을 먹고는 커버교사가 해야 하는 업무 중에 Lost Property(분실물)을 분리하고 관리하고 돌려주는 일이 있는데 우선 지난 학기에 쌓아두고 찾아가지 않는 것들을 정리했다. 주로 체육복, 운동화, 교복 니트, 치마, 셔츠, 코트, 수업폴더 등등이다. 보통 이름을 다 적어야 하지만 이름이 없어 찾아주지 못한 것들이었다. 학교에서 학기 중에 몇 번 분실물을 강당에 쌓아놓고 학생들이 점심시간에 와서 찾아가도록 하지만 여전히 찾아가지 않는 물건들이 꽤 된다. 특히 아까운 건 운동화인데 아주 새것들도 많았고 브랜드 운동화로 몇만 원은 족히 주고 샀을 것들도 있었는데 신발은 다 갔다 버리라고 해서 일단 폐기물 버리는 트럭에 던져놓았다. 너무 아까워 같이 간 헬다에게 물으니 전임자 잭은 한 텀이 지난 신발들은 따로 모아 자선단체에 가져다줬다고 했다. 본인이 차가 없어 그렇게 못하니 버릴 수밖에 없지 않냐고 하길래 다음번부터는 내가 차가 있으니, 그리고 동네에 자선단체가 운영하는 가게가 두 개가 있으니 가져다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하루 일과를 끝내고 집으로 와서 B에게

"너희 학교에서 올해 캠브리지대학에 몇 명 갔는지 알아?"

"음.. 20명?"

"야! 그러면 너네 학교 전국에서 제일 유명한 고등학교 될 거야. 20명은 무슨. 4명이래. 어때? 너도 해볼 만하지? 옥스퍼드 가고 싶다며"

"음, 할 수야 있겠지. 근데 왜 옥스퍼드는 안 가고 다 캠브리지를 갔지?"

왜 이 아이가 옥스퍼드에 꽂혔는지는 모른다. 그리고 대학을 가려면 아작 6년이 남아있다. 그리고 아직 두 대학의 차이도 모르고... 무슨 학과가 있는지도 모르고... 정작 본인이 뭘 공부해야 할지도 모르는 아이인데 옥스퍼드가 목표라니 일단 우리는 '너는 할 수 있어!'라고 무한 긍정 에너지를 쏴주는 것으로만 지지를 표하고 있다.


처음 출근한 곳도 아니고, 커버수업을 안 해본 것도 아닌데 왠지 첫 직장에 출근하는 것 같이 긴장되고 불안했다. 학교라는 곳은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 상황에서도 늘 부담감과 스트레스가 존재한다고 했다.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어떤 일이든 곧 일어날 수 있고, 작은말로 시작된 일이 엄청난 파장을 일으켜 산불 퍼져나가듯이 엄청난 재앙으로 찾아올 수도 있다. 그래서 리처드가 이런 곳에 더 깊이 발을 들여놓은 나보고 바보 천치라 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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