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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엄마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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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Oct 19. 2023

엄마와 오디오, B와 일렉기타

B의 10살 생일에 우리는 우쿨렐레의 단순함에 지루해하는 B에게 생일선물로 통기타를 준비했다. 생일까지 우리 집에 두면 사방 쑤시고 다니는 B가 금방 알아챌까 봐서 옆집 하워드에게 생일까지 맡아달라고 맡겨두었다가 남편이  생일 전날 받아와서 생일날 아침에 주었다. B는 너무 좋아하며 엉엉 울었다. 이렇게 큰 선물을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다며 너무 감격해해서 우리 모두 눈시울이 붉어졌었다. 2년 동안 본인이 작사작곡도 해가며 유튜브를 통해 통기타를 열심히 배워가며 쳤다.


그러다가 얼마 전부터 본인은 일렉트릭기타가 가지고 싶어 돈을 모으고 있다고 했다. 가격대도 다 알아본 모양이다. 그래서 올해 생일에는 선물은 필요 없고 돈으로 달라고 할머니랑 우리한테 이미 말을 했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이번 생일은 일렉트릭기타를 사주자고 했다. 나도 일을 하니 아주 많이 부담이 가지 않아 제안을 했는데 남편도 좋다고 신나 했다.


우리가 자주 가는 악기상에 전화를 했는데 종류가 많기도 하고 색도 다양해서 본인이 맘에 드는 것을 골라야 후회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그날부터 우린 작전을 짜기 시작했다. 이 작전에 큰아이는 제외다. 큰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얼굴에 모든 것이 드러난다.


우선 토요일 아침에 모두를 깨웠다.

남편 : 캐러반 파는 곳에 괜찮은 중고가 나왔는데 가족이 모두 사용할 비싼 물건이니 같이 보고 결정해야 하니까 다들 아침 간단하게 먹고 나가자!

두 딸: 알았어!

집에서 30분 정도 떨어져 있는 가게로 가는데 큰딸이 왜 질링험(악기상이 있는 도시)으로 들어왔냐고 묻는다.

남편: 사실 너 바이올린선생님이 스트링이 필요해서 주문을 해놨는데 차에 문제가 생겨서 픽업을 못하신다고 연락이 왔어. 아빠가 이곳으로 주말에 갈 일 있어서 픽업하기로 했어. 다 같이 들어가서 픽업하자.

두 딸: 우린 그냥 차 안에 있으면 안 돼?

나: 오랜만에 악기상에 왔는데 들어가 보자. 구경하면 되잖아.

.......

가게에 들어오자마자 남편이 직원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동안 B는 일렉기타가 있는 곳에서 신기해하며 둘러보고 있었다. 직원과 대화를 끝낸 남편이 B에게 다가왔다.

"자, 원하는 일렉기타 하나 골라봐. 생일선물로 엄마아빠가 사줄게"

그러자 B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WHAT? ARE YOU CRAZY? I can`t believe it. WHAT? Seriously?"

요즘 사춘기에 접어들어 사사건건 화를 내는 B가 그렇게 활짝 웃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신이 나서 이것저것 만져보고 고르고는 계속해서 It`s crazy! 를 반복했다.


일렉기타와 앰프, 가방, 튜너를 다 사니 300파운드(50만 원) 정도 되었다. B는 자기 생일에 그렇게 큰돈을 써도 되냐며 너무 고마워했다. 차 안으로 돌아와서는 가게에서 눈물이 나는데 간신히 참았다며 눈물이 글썽했다. 그리고 집에 와서는 나와 남편을 꼭 끌어안아주며 너무 고맙다고 이렇게 행복해보긴 처음이라며 좋아했다.



내가 중학교 1학년때의 일이다. 우리 집은 엄마혼자 아이 넷을 키워내야 하는 아주 넉넉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당시 카세트라디오를 끼고 살던 나에게 갑자기 스테레오 오디오라는 새로운 세상이 보였었다. 고모네 사촌언니도 가지고 있고, 내 친구들 중에 가진 애들이 몇 있어서 우리 집형편에 그걸 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엄마에게 가지고 싶다고 몇 번 말한 모양이다. 그리고 카세트라디오가 조금씩 문제가 생기자 고쳐보려 하지도 않고 고장 났다 하고 내다 버렸다.

그러다 엄마가 한 달에 한번 쉬는 날 김치거리를 사러 시장에 가는데 따라갔다. 엄마는 시장골목으로 들어가기 전에 LG가게 앞에 멈췄다.

"여기 한번 들어가 보자"

"엄마, 여길 왜? 뭐 사게? 혹시 나 오디오 사주려고?"

"오디오 살 돈이 어디 있어. 다른 거 사러 왔어. 일단 들어가자"

우린 그렇게 문을 열고 들어갔고 나는 엄마가 뭘 하는지도 모르고 오디오를 둘러보느라 정신을 빼놓고 있었는데 갑자기 엄마가...

"하나 골라봐. 엄마가 사줄게."

"엄마? 정말이야? 정말 나 사줄 거야?" 난 그 자리에서 펄쩍펄쩍 뛰며 좋아하며 당시 29만 원 정도 했던 아주 큰 오디오를 골랐고, 엄마는 현금으로 바로 계산을 했고, 다음날 내 방에 아주 한자리 크게 차지하게 되었다. 그 뒤로 나의 중학교와 고등학교 생활은 그 오디오와 늘 함께였다.


엄마와 통화를 하다가 오늘 B에게 기타를 사준 이야기를 하며,

"엄마, 그때 정말 고마웠어. 그렇게 어렵게 살았는데도 엄마가 내가 정말 너무도 원했던 걸 그렇게 사줬기 때문에 마음은 그렇게 가난하지 않게 잘 살 수 있었던 것 같아. 고맙고 사랑해 엄마"

뚝뚝한 나한테 갑자기 그런 말을 듣고는 엄마도 한마디 했다.

"그렇게 생각해 주니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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