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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May 13. 2023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2023. 5. 11 목요일

누군가 그랬다. 삶은 사실 어떻게 보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단지 우리가 살면서 이것저것에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뭔가 특별해 보이는 것뿐이라고. 그래서 오늘부터 하루하루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들을 적어나가 보려고 한다. 그럼 하루를 마감하는 밤 덜 쓸쓸하고 허무할 것 같다.


고사리

남편과 지난주 토요일에 영국에 와서 처음으로 고사리를 꺾어 왔다. 남편 고사리에 별 흥미를 보이지 않아서 가만히 공원에서 책이나 보며 앉아있으라고 했다. 커피도 내려가겠다고 꼬셨더니 바로 넘어갔다. 고사리를 뜯으러 가서 짧은 시간 한 가방 뜯어 왔는데... 삶아서 말리려고 하는데 날씨가 도와주질 않아 모두 곰팡이가 나서 버리게 되었다. 며칠을 수고롭게 밖에 내놓고 들여놓고를 반복했던 소중한 고사리! 인터넷에 찾아보니 날이 흐릴 땐 걷어서 냉장고에 두었다가 날이 좋은 날 하루에 말려버리라고 한다. 좋은 정보다. 실패는 배움의 기회로 인도한다. 곰팡이 나서 버린 고사리가 아깝지만 다음번 고사리는 절대로 곰팡이 나게 내버려 두지 않을 테니 말이다.


열무김치

올해 15살인 큰 딸, 다음 주면 일생에 처음 마주하는 가장 중요한 시험대! GCSE(고등검정시험). 잘 먹고 컨디션 조절 잘해야 하는데 입맛이 토종 한국입맛이다. 배추김치 보다도 파김치, 열무김치를 좋아한다. 밥만 해놓으면 달걀프라이해서 할머니가 가져온 들기름에 고추장 넣고 신나게 비벼먹을 모습을 생각하며 열무 대체 CHOY SOM과 청경채로 열무김치처럼 담가놓았다. 맛있게 먹을 딸아이 생각하니 마음이 뿌듯하다.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날이 좋아 별채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막심 벤가로프의 젊은 시절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콘체르토 연주 영상을 블루투스에 연결해서 듣는데 행복이 별거 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연주 영상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감상한다. 내 인생 행복지수를 끌어올리는데 엄청난 공헌을 하고 있다. Thank you very much indeed Maxim!

https://www.youtube.com/watch?v=YsbrRAgv1b4&t=186s


하겐다즈 딸기 크림 아이스크림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다. 슈퍼에 갔는데 2개에 7파운드(약 11,000원) 세일이다. 보통 하나에 5파운드 정도 하는데 그야말로 득템을 했다. 두 딸의 행복한 미소가 떠오른다. 이게 바로 쇼핑하는 재미가 아닐까 한다.


언니 카키색 여름 재킷

나는 옷을 사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직장생활을 위해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옷을 사지 않았고, 영국에 와서도 마찬가지이다. 영국에 와서는 특히 사이즈가 맞지 않아 옷 사는 게 매우 힘들다. 영국사람들은 나를 Tiny 하다고 자주 말한다. 키도 작고 몸집도 작아 그런가 보다. 그런 나를 위해 옷 사는 게 취미인 언니가 입던 옷을 잘 보관하고 있다가 나에게 준다. 작년 여름에 받아온 여름 카키색 재킷! 오늘 날이 좋아 처음 꺼내 입었는데 너무 맘에 든다. 좋았어! 이번 여름은 너와 함께 하겠어!


달팽이 vs 민달팽이

영국에 너무 많은 달팽이 군단! 모종을 심어놓으면 하룻밤사이에 꿀꺽해서 잎이 모두 사라지는 경우가 흔하다. 그래서 저녁에 뭔가를 덮어놓곤 하는데 오늘 아침에 오이모종 하나가 사라졌다. 그래서 주위를 살펴보니 민달팽이(슬러그) 한 마리, 달팽이 두 마리가 있었다. 달팽이는 왠지 미워 보이지가 않는다. 달팽이는 집 밖으로 쭉 뻗은 몸과 더듬이 모두 사랑스러워 보인다.  그에 반해 민달팽이는 지렁이도 아닌 것이 아주 몸 자체가 징그럽게 생겼다. 괜히 나의 저주는 오롯이 민달팽이에게로만 향했다. 수적으로 봐도 달팽이가 먹어치운 양이 더 많을 텐데... 집도 없어 서러울 민달팽이에게 집 없다고 무시해 버린 나 자신의 편협한 속내를 반성했다. 이제 앞으로 내 농작물 사수를 위해 공평하게 집이 있든 없든 모두 미워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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