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러했지만, 너도 그럴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 얘들아, 선생님은 수학 현행학습만으로 수능 수학 만점을 받았어."
그렇게 말했다. 사실 뻥이다. (ㅎㅎ)
수학 만점은 맞지만, 선행학습을 한 번도 안 한 것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중학교 1학년 내용 조금 공부했었고, 중학교 3학년 때 고등학교 1학년 내용 조금 공부했었다. 하지만, 제대로 공부한 것도 아니고, 친구 따라 학원 다니며 한 귀로 흘려들은 정도의 공부였다. 그래서 그냥 나에겐 수학 선행학습이란 없는 셈 친다. 사교육도 없는 셈 친다.
학생들에게 저런 말을 하는 이유는 내가 잘났다는 것을 강조하고 위함이 아니다. 사실 약간 있어 보이려는 의도는 있다. (ㅎㅎ) 하지만 보다 큰 이유는 억지로 타인의 강요, 혹은 분위기에 이끌려 이리저리 학원 쫓아다니며 선행학습하면서 큰 효과를 보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아서다. 혹은, '누구는 지금 미적분까지 다 끝냈다던데? 나는 아직 수1 하고 있는데...'라고 생각하는 중학생들이 있어서다.
현재 근무하는 중학교에 오기 전까지는 경쟁하듯이 더 많이 미리 공부하려고 하는 모습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선행학습의 정도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수학교사로서 일반고등학교, 과학중점학교, 면단위 농어촌 중학교, 읍단위 농어촌 고등학교를 거쳐 학군지 중학교에 이르는 경험은 직접 경험해 보지 않으면 몰랐을 많은 것들을 알게 했다.
이곳 중학교 3학년 학생이 고등학교 3학년 수학 모의고사를 푼다. 몇몇, 아니 상당히 많은 아이들이 1등급이 나오는 수준이며, 그중 몇몇은 만점이 나온다.
솔직히 몇몇 아이들을 볼 때면, "넌 나보다 잘하는 것 같다."라고 말한다. 중학교 시절의 '나'가 아니라, 내가 가장 잘했던 시절의 '나'와 비교해서 말이다.
"어떻게 하면 너처럼 수학을 잘하지?"라고 묻고 싶을 때가 많다.
그리고 나는 실제로 물어본다. (ㅎㅎ) 자고로 옛 선현의 말씀, 아랫사람에게 물어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 했다. 수학교사가 중학생에게 수학 잘하는 비법을 물어보는 것이 어찌 부끄러워할 일이지. 암... 부끄럽다.
하지만 그런 아이들이 영재고를 수월하게 중2 때 최종합격하는 아이라거나, 수학 국제대회에 나가는 국가대표라면 괜찮지 않나. 내가 가보지도 못한 길을 가는 아이들이니 말이다.
어쨌든 수학 잘하는 비법을 물어보면 백이면 백 예상했던 대답들이 나온다. 그 예상이라는 것이 별 것 없다. 그냥 모두 각양각색일 것이라는 것이 내 예상이었고, 실제로도 그렇다. 어찌 잘하는 방법이 단 하나의 방법이겠는가? (그래서 수학학습법!! 이라는 이름으로 돈벌이하기에 참 좋다. 이 방법, 저 방법 다 틀린 방법이 아니니 말이다. 나도 쓰겠다. 수학은 못하지만, 수학점수를 잘 받는 수학학습의 비법! )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런 대답들 중에 단 하나도 "선행학습을 많이 해서요."라는 대답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동네에서 수학 선행을 안 하는 아이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왜? 수학을 잘하는데 수학 선행이 가장 큰 요인이 아닌 것 같음에도... 왜?
왜 선행을 하는 거지?
응. 이상해.
아니, 이상하게 바라본다가 맞지.
아니면, 스스로 이상하게 느끼던가.
선행을 안 하면 이상한 아이로 바라보거나, 스스로 불안감을 느끼거나, 선행을 안 했다는 이유로 자신감이 낮아지고, 자존감이 떨어지는 환경에 놓여있다. (이 동네는!) 참고로, 농어촌은 아니었다. (농어촌지역과는 굉장한 차이가 있다. 하지만 농어촌학교가 유리한 점도 굉장히 많다. 그 장단점은 다음 이 시간에...)
만약 내가 이곳 학군지에서 자라고 태어났다면, 내가 현행학습만을 했을까? 스스로 생각해 보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주변에 귀 막고 눈 감고 내 앞에 있는 것들만 시야에 들어온다면 괜찮을 것 같지만, 요즘 시대에는 그렇게 하기가 예전보다 훨씬 더 난이도가 높은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 아이들을 볼 때면 갑갑하고 숨 막히는 느낌이 든다. 학교, 학원, 학교, 학원, 공부, 공부, 공부,...,
나는 법적으로 학원들이 밤 10시 이후에는 다 애들 보내는 줄 알았다. 그전에 농어촌에서 아이들을 계속 가르치다 보니, 너무 순진했다.
수업은 10시에 끝나지만, 새벽 1시까지 자습을 하고 집에 간단다. 자습이라 10시 넘어서해도 된다나?
학교 끝나면 학원 가서 새벽 1시까지 학원에 있다가 집에 온다고...? 그런데 또 학원 숙제는 오죽 많고...
" 얘들아. 너희는 안 힘드니? 그렇게 선행하고, 또 학원 숙제하고, 계속 미리 진도 나가고,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
안쓰러운 눈빛으로 아이들을 바라보았는데, 아이들 대답이 가관이었다.
아이들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오히려 반문한다.
" 저희도 놀 때는 노는데요? 일요일엔 그래도 놀아요."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
다들 그렇게 하는 게 정상이고, 그게 보통인 곳이다.
직전에 농어촌중학교와 농어촌고등학교에서 연달아 8년을 근무하고 온 16년차 교사가 상황파악 못 하고 아이들의 평범한 일상을 헤치려 한 것이었다!
원래 다 그 정도는 기본으로 하는 것이란다.
아이들의 평범한 일상에 대한 놀라움은 학업량에만 있지 않았다.
중학교 2학년 교실에서 "어제 10시에 잔 사람, 손?" 질문을 던졌다.
1명 있었다.
"어제 11시에 잔 사람?" 없었다. "어제 12시에 잔 사람?" 조금 있었다. "어제 1시에 잔 사람?" 꽤 있었다.
"어제 2시에 잔 사람?" 계속 있다. "어제 3시에 잔사람?" 또 있다.... "손 안 든 사람?" 또 있다. "넌 몇 시에 잔 거야?"
" 안 잤는데요."
마치 대단한 업적을 이룬 것 같이 으쓱 거리는 학생과 그 학생을 보며 감탄하는 듯한 아이들의 표정.
앞 서 아이들의 표정에서도 늦게 손을 들 때마다, '내가 더 늦게 잤다. 내가 더 대단해.' 하는 듯한 표정이 읽힌다.
이 아이들... 어떤 삶을 살아온 것인가?
생각해 보면 이런 환경에서 이렇게 살아가길 바라는 부모님의 의도로 키워져 온 아이들이 많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공부량이 내 예상을 초월한다. 그래서 유명 학군지로 이사들을 오는 것이겠구나.
그렇게 부모에 의해 만들어져 왔더라도, 그 과정을 거쳤다는 점에서 충분히 인정할 만하다.
훌륭하다.
그리고 실제로도 뛰어난 학생들이 많다.
그런데,
난 수학교사지만, 수학교육과가 아니라 수학과를 졸업했다.
난 서울의 일반고 3학년 재학 시절의 1년 동안 내신, 모의고사, 수능까지 수학 문제를 단 한 문제도 틀려본 적이 없다. 대학교에 가서도 모든 자연열(이과대, 공과대, 의대 등) 천 명이 넘는 학생들이 동시에 응시하는 미적분학 시험에서 교수님의 채점기준을 바꾸고, 나를 제외한 모든 학생의 점수에 감점을 만들며 유일하게 만점을 받는 대사건(?)의 장본인이 되기도 했다. 내가 써 내려간 문제풀이 노트는 솔루션이라는 이름으로 동기, 후배들에게 복사본들이 유물처럼 한 동안 전해졌다.
대학 4년간 적수가 없었다. 서울과학고 출신이든, 민사고 출신이든, 뭐든 내 앞에 아무도 없었다. 항상 2인자였던 동기 여학생은 서울대 의학전문대학원으로 가서 의사가 되었다. 나의 수학 성적에 감탄하던 동기 중 하나는 네이버에 가서 파파고를 만들었고, 임원이 되었다. 다른 동기 하나는 이름만 들으면 알 화장품 회사를 창업해 중국에 진출했고, 까마득히 차이나는 성적을 받았던 친구는 변호사가 되었다.
나는?
"야! 너 같은 애가 무슨 교사를 하려고 해?"
"돈 벌 수 있는 수많은 좋은 직업이 있는데! "
라는 말들을 주변에서 들으며, 수학교사가 되었다.
원래부터 교사가 되려고 했었지만...
사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수학교사 한다는 게 뭔가 더 멋져 보이는 기분에 으쓱하며 더 교사가 되고 싶어졌다. (맙소사)
"야! 나는 말이야! 돈을 벌지 않고, 사람을 벌 거야."
"이것은 나의 소명이고, 나를 만나는 수많은 제자들의 인생을 바꿀 거라고. "
그때 저런 말을 하기 전에 일찍이 주변 말을 들었어야 했다.(ㅎㅎ)
어쨌든 그렇게 수학교사가 된 나는, 고백컨데
"나는 수학을 잘하지 못한다."
우리는 착각한다. 점수가 높으면 잘한다고.
이게 교육자가 할 말인가.
'점수만 잘 받으면 된다니'
하지만 교실 안에, 책상 앞에 아이들을 가둬놓고 잘못된 방식으로 갈 바에야 차라리 저게 낫다고 본다.
덜 공부하고, 점수를 잘 받는 방식 말이다.
그리고 그 시간에 더 뛰어놀고, 더 친구랑 어울리고, 다양한 책을 읽고, 사색하고, 다양하게 경험하는 시간을 보내란 말이다.
학원, 사교육, 불안을 조장하는 여러 매체들에 혹해서 소득도 없이 낭비하는 시간들이 너무 눈물 나게 아쉽다. (아닌 아이들도 물론 많이 있지만)
사교육에 있는 수많은 학원들은 돈을 벌기 위해, 학생들을 계속 다니게 만들기 위해
'넌 학원을 다녀야 하는 아이야.'
'학원에서는 이런 거도 가르쳐'
'학원에서는 이렇게 어려운 것도 알려주지.'
'학원에서는 이렇게 숙제를 체계적으로 내줘서 네가 연습할 수 있게 해 주지.'
'우리 학원에서 영재고 몇 명 합격시켰어, 우리 학원에서 서울대 몇 명 합격시켰어' 등등
다양한 방식으로 아이들을 끌어들인다.
흠.. 사실 내가 학원을 운영했으면 나도 그랬을 거다. 더 노골적이고, 더 지능적으로 말이다. (ㅎㅎ)
하지만 나는 학교 교사니까,
" 얘들아. 현행학습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해. 그리고 너희 생각해 봐. 대학교 가서도 학원에 의존해서 선행학습 할 거야? 그때 가서는 어차피 다 현행학습인 거야. 그리고 선생님(나)은 경시대회, 올림피아드 단 한 번도 나가본 적도 없어. 그런데 대학교 가서 그런 출신들과 경쟁해서 전혀 밀리지 않았고, 오히려 더 잘했다구. (대학 성적 화면에 보여줌). 잘 생각해 봐. 어차피 수능 혹은 입시의 목표라는 산 정상까지 도착만 하면 되는데, 헥헥 거리며 서둘러 뛰어가서 그곳에서 한 없이 기다리는데 시간을 보낼래, 아니면 천천히 주변 살피고 여유롭게 다양한 아름다움을 느끼고 경험하고 배우며 도착할래. "
"너 수학자 될 거야? 수학자 될 것 아니잖아. 무슨 공부를 수학자 될 것처럼 하고 있어. 100점 맞는 사람이 90점 맞은 사람보다 10점만큼 수학을 더 잘해? 그거 아니야. 그냥 100점 맞았을 뿐이고, 90점 맞았을 뿐이야. 평소에 90점이 훨씬 더 잘했을 수도 있지. 근데 평가는 그 점수로 결정되잖아. 자! 그러면 가장 효율적인 게 뭐다? 만약 내가 수학 정말 잘했는데, 점수는 안 나온다면 얼마나 속상해. 그치? 반대로 내가 수학을 잘하지는 못하는데, 점수는 계속 100점이야. 그럼 어때? 교사로서 할 말은 아니지만, 점수 잘 받으면 좋은 것은 사실이잖아. 그리고 사람들은 점수가 높으면, 잘하는 건 줄 안다니까. 그래서 우리의 목표는 100점 맞을 정도에 맞춰서 공부하기. "
" 평생 입시 수학 공부할 거야? 인생의 목표가 미적분이야? 아니잖아. 수학도 중요하지만, 춤도 중요해. (웅성웅성) 갑자기 춤 얘기 나왔다고 웃지 마. 얘들아. (ㅎㅎ) TED에서 가장 조회수 많은 영상에 나오는 말이라구. 학교는 창의성을 어떻게 죽이는가? 라는 조회수 가장 많은 영상 있어. 한번 봐봐. 수학은 너의 인생에 있어서 목표야, 도구야? 그럼 딱 필요한 만큼 할 수 있게 효율적으로 해. 너, 너, 너, 그리거 너랑 너희 영재고 갈 아이들이랑 너는 빼고. 넌 수학자 해라. 그랬으면 좋겠다. 넌 그냥 지금처럼 공부해. 넌 그게 행복하잖아."
"어쨌든 점수를 위한 공부를 해. 상처받지 말고. 진짜 공부는 대학가서 하고. 나보다 못하는 아이가 나보다 점수 높게 나오는 순간들을 겪어가면서 어떤 기분을 느끼게 될까? 그런 아이들이 무수히 많아. 왜냐면 평가는 그렇거든. 그때의 점수 하나로만 평가되니까. 한 문제 잘 찍어서 서울대 간 애랑, 한 문제 실수해서 연세대 간 애랑 뭐 얼마나 실력차이가 있겠어. 그래서 상위권이 재수가 많아. 억울하거든. 나보다 잘했던 적이 없는 아이가 단 한 번의 시험에서 나보다 더 좋은 점수받아서 좋은 대학을 가거든. 그게 인생이야. 아무리 부정해도 그렇게 되더라고. 어. 그래. 내 얘기야. 이십년이 지나도 억울하네. (ㅎㅎ) "
" 그리고 잠 좀 많이 자. "우리는 왜 잠을 자야할까(매슈 워커)" 라는 책 좀 사서 하나씩 봐라 너희는. 좋은 내용이 너무 많아서 설명하기도 귀찮다. 그냥 읽어. 의심하지 마. 제목이 별로라 그렇지 정말 보석 같은 책이다. 장담컨대 그것 정독하면 너희는 절대로 지금처럼 살지 않을 거야. 500쪽이 넘어서 너희가 읽을 시간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나중에 여유가 많으면 요약해서 설명해 줄게. 그러면 한 번 읽고 싶어 질 거야. "
" 수학은 못하지만, 수학 점수는 잘 받고 싶어? 그거 가능하지. 그게 나야. 선생님 고등학교 2학년때는 수학 모의고사 보면 반타작이었어. 다 맞아 본 적이 없었어. 고2 겨울, 고3이 되면서 뭔가를 알게 됐지. 차차 알려줄게. 수학 잘하는 법은 나에게서 배우지 말고, 수학 점수 잘 받는 것은 나를 통해 배워. 가르칠 수는 있지만, 전할 수는 없다라는 말이 있잖아. 가르치는 대로 배우려 하지 말고, 내가 하는 모습, 나의 태도, 나의 사고과정 등을 최대한 노출해서 보여줄 테니 모방해 가며 스스로 터득해. 학원이든 그 어디서든 배울 수 없는 것들을 가르쳐줄 테니까, 의심하지 말고 따라 해 봐. 너희는 참 운이 좋다. 날 만나서. (ㅎㅎ) "
그러면서도 아들은 학원 보내서 선행학습 시키는 사람. 그게 나다. (ㅎㅎ)
자! 이제 현행 학습을 위한 수학 학습법을 하나씩 소개...할까요 말까요
글쓰기 시작하면 계속 쓰고 싶어지는데, 일상이 너무 바쁘어요. 엉엉.
다음 글은 언제 올라올런지 장담 못하지요~ 누가 나좀 재촉해주세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