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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아나필락시스의 끔찍했던 기억

트라우마로 남은 아이의 기침소리

by 임수정

2019년 9월 초 어느 날, 심상치 않은 아이의 기침이 시작됐다.


나와 남편 그리고 아이는 마카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공항리무진에 탑승했다. 어느덧 밖은 깜깜해져 있었고, 어서 집에 도착해 여행의 피로를 풀고 푹 자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오느라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했던 아이는 배가 고픈지 두유를 달라고 칭얼거렸고, 나는 행여나 피곤해 잠든 다른 승객들에게 방해가 될까 싶어 남편이 마카오 공항 라운지에서 챙겨온 두유를 더듬더듬 꺼내 먹였다.


그리고, 시작된 아이의 기침소리. 처음에는 추운가? 싶어 옷으로 따뜻하게 덮어줬지만 뭔가 목에 걸린 듯 켁켁대는 기침은 점점 잦아졌고, 목에서 쉰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남편에게 "혹시 아까 챙겨온 두유 전성분 확인했어?"라고 묻자 남편은 "두유인데 당연히 우유 안들어가있겠지"라고 말했지만 불안한 기색으로 빨리 약을 먹이라고 말했다. 약을 먹였지만 급기야 아이는 먹은 것을 토하고 울어대기 시작했고, 점점 숨쉬기 힘든 듯 쉬어가는 목소리에 나는 미칠듯 불안해졌다. 기사님께 "아이가 알러지가 있는데 지금 응급실에 가야할 것 같다. 잠시 세워달라"고 요청했고, 따라 내리려는 남편에게 "아이는 내가 데리고 응급실로 갈테니 짐을 집에 두고 차를 가지고 병원으로 오라"고 말한 뒤 황급히 택시를 잡아 타고 응급실로 향했다.


응급실 입구에 앉아있던 의사선생님은 힘 없이 축 늘어진 아이를 보고도 차분하게 증상을 물었다. 나는 아이에게 두유를 먹였다며 증상을 설명했고, 이어 산소포화도를 측정한 선생님은 다소 놀라더니 "너 많이 아프구나"라며 곧바로 소아응급실 자리를 내주었다. 아이에게 주사를 놓고, 링거를 꽂고, 네뷸라이저를 하는 동안 나는 아까 먹인 두유 브랜드를 떠올려 미친듯이 인터넷을 검색했다. 어렵사리 외국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찾아낸 두유 전성분에는 "solid milk"가 적혀있었다.


응급실로 차를 가지고 온 남편은 "도대체 왜 두유에 우유를 넣는거냐"며 어처구니 없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성분을 최종 확인을 하지 않고 먹인건 나이기에, 또 화를 낸다고 해도 나아질 건 없을 것이라는 걸 알기에 "우리 남 탓은 하지 말자"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이 날 우리는 새벽 세 시가 되어서야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응급처치를 한 뒤 아이는 빠르게 호전되었지만, 의사선생님은 "정말 큰일날 뻔 했다. 만약 응급실에 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비행기 안에서 그 두유를 먹였다면 아이가 정말 위험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상만 해도 끔찍해 뒷골이 당겼다. 아나필락시스 환자는 빠르게 처치할 경우 몇 시간 후면 언제 그랬냐는 듯 회복할 수 있지만, 처치가 늦어진다면...기도가 붓고 호흡이 어려워지며 극단적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


이전에도 우유, 계란 알레르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아나필락시스를 겪은 것은 처음이었다. 이 날 이후로 많은 것이 변했다. 아이는 바로 대학병원 소아과 알러지 선생님에게 외래 진료를 받게 되었고, 젝스트를 처방받게 되었고, 우유 면역 치료를 시도해보게 되었다.


나는 아이의 아주 작은 기침소리에도 몹시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었다. 잠깐 사레가 들려 기침하는 것과 거의 비슷한 양상의 기침으로 시작하기에, 사실상 구분하기 어렵다 보니 조금만 켁켁거려도 심장이 덜컹 내려앉고 머리카락이 쭈뼛 설 지경이다.


아나필락시스를 겪기 전 평소 육아의 긴장도가 10 정도였다면, 지금은 늘 30~40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음식을 아무리 조심히 먹인다 해도, 사람이기에 또한 여러 가지 먹는 즐거움을 맛보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앞서 실수로 우유 성분이 들어간 음식을 먹이게 될 때가 있다. 내 손으로 먹인 음식에 아이가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면, 심지어 그걸로 인해 죽을지도 모르는 아나필락시스 반응까지 오게 되면 자책감에 심장을 갈갈이 찢고 싶은 심정이 된다. 그리고 언제 아나필락시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그런 날이 지금 내 실수 때문에 더 뒤로 늦춰지는 것은 아닐까 끝없는 심연 속으로 추락하는 것만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새 회복해 집에 가자고 링거 바늘을 빼달라고 칭얼대는 아이를 볼 때면 가슴을 쓸어내리고 감사 또 감사한 마음만이 가득해진다. 간호사 선생님, 의사 선생님에게 혀 짧은 소리로 고맙습니다 인사를 건네고 퇴원할 때는 그저 다행이다, 이제 살아났다 싶어 아이를 꼭 안고 웃으며 집에 오곤 한다.


육아는 행복한 지옥이라 했던가. 나의 육아지옥은 아나필락시스 지옥인가보다. 언젠가는 꼭 졸업할 수 있기를, 언젠가는 가슴 쓸어내린 추억이라며 아이에게 담담히 이야기해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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