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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수정 Sep 30. 2022

대학병원 소아과에 가면 눈물이 난다

적어도 아픈 '아이'가 없는 세상이었으면

"아이의 알러지 수치가 변함이 별로 없고, 성인이 되어도 없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들은 것이 약 2년 전이었다. 그때의 가슴 쿵 하던 절망감 때문에, 오히려 마음을 내려놓고 더 조심하며 생활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마음이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2년 동안 알러지 검사를 미루고 미뤘고, 그래도 학교 가기 전에 면역치료를 시도해 보려면 이제라도 다시 대학병원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면역치료로 유명한 교수님이 계신 대학병원에 약 1달이 걸려 초진 예약을 하고 다녀왔다.


대학병원의 대기시간은 상상초월이다. 아침 10시 예약을 하고, 혹시나 해서 9시 30분에 도착했음에도 접수부터 예비 진료, 기나긴 대기를 거쳐 진료실에 11시 50분에 들어갈 수 있었다. 대학병원 가는 것이 힘든 이유는 이런 기다림도 있지만, 너무나 어린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부모를 보며 마음이 저릿저릿해지는 것을 견디는 것도 한몫한다. 


보통 알러지 같이 특정 질환에 특화된 교수님들의 방 앞에는 비슷한 아이들이 앉아있는데, 우리 아이처럼 알러지 특화된 아이들이 모여 있는 대기실에서는 아이가 아무리 보채도 절대로 과자봉지를 열어주지 않는다. 혹시나 밀이나 견과류 등에 수치가 아주 심하게 높은 아이들은 공기 중에 떠다니는 미세한 과자 가루만으로도 심한 반응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진료를 보며 교수님께 듣기로, 어떤 할머니가 무심코 대기실에 있던 아이에게 빵을 한 조각 주었다가 그 자리에서 아나필락시스가 온 사례도 있다고 한다.


옆자리에 앉은 내 아이 또래의 남자아이는 힐끔힐끔 나를 바라본다. 아빠와 함께 온 아이는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져도 좀처럼 보채지 않다가 2시간이 넘어가자 힘들다며 눈물을 뚝뚝 흘린다. 예비 진료에 대답하는 소리를 들어보니, 우리 아이처럼 우유와 계란 알러지도 있고 그 외에 대두 등 여러 알러지가 있다고 한다. 심한 알러지가 있는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또래보다 질긴 인내심을 갖게 된다. 아무 음식이나 배고프다고 입에 넣었다간 정말로 큰일이 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에, 먹을 것이 눈 앞에 있어도 "엄마 성분 확인해주세요"하고 서서 기다린다. 동네 아줌마들이 예쁘다고 사탕이고 과자고 건네주셔도 "저는 알레르기가 있어서 못먹어요"하고 돌아선다. 병원에서 대기시간이 길어져 힘들어도 으앙 하고 울지 않고 눈물을 또르르 흘리며 "힘들어요..."라고 말한다.


우리 옆 진료실에는 소아 뇌전증을 보시는 교수님이 계신 것 같았다. 소아라고 하기엔 큰 몸집, 그러나 어린아이처럼 바닥에 주저앉기도 하고 병실에 있는 물건을 만지러 가려고 하는 아이, 그 아이를 저지하는 너무나 작고 굽은 어깨의 아버지... 만약 아이에게 알러지가 없었고, 언제 나을지 알 수 없어 답답한 마음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면, 모든 음식의 전성분을 확인하고 아나필락시스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심장이 오그라드는 경험을 해본 적이 없었더라면 별생각 없이 바라보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젠 이 모든 상황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오고, 자꾸 주책맞게 눈물이 찬다. 마음속에 주룩주룩 비가 내린다.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고 키우는 것을 축복이라 말하지만, 세상에는 그 축복이 너무나 큰 아픔이 되어버린 부모들도 많다. 물론 아픈 와중에도 종종 아이가 주는 기쁨은 무엇과도 비할 수가 없지만, 그럼에도 가슴속을 샐 틈 없이 커다란 돌덩이가 꽉 막고 있는 듯한 막막함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아이와 행복하게 함께할 날을 꿈꾸던 천국에서, 아이 대신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하는 지옥으로 곤두박질치는 그 엄청난 낙차를 그 누구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  


2년 만에 피 검사를 하면서 아이는 많이 울었다. 굵은 주사바늘이 꽂히고, 피가 충분히 나오지 않아 한참을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해야 하는 상황이 많이 버거웠을 것이다. 이제 2주 후면 알러지 검사 결과가 나오고, 면역치료를 위한 경구 유발 검사도 거쳐야 할 것이다. 


어제 아이가 나에게 말했다. "나는 이대로도 괜찮은데. 나는 지금이 좋아." 

성향상 처음 접하는 것에 늘 두려움을 갖는 아이지만, 사실상 응급상황을 염두에 두고 해야 하는 면역치료에 대한 두려움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간식 없어? 맨날 똑같은 것만 먹어?"라고 보채는 아이는 내심 자신도 자유롭게 아무 간식이나 먹을 수 있는 날을 꿈꾸고 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 날이 찾아오기 위해서는 수많은 날들을 매일 억지로 알러지 음식을 조금씩 먹어가며 적응하는 치료를 해야 하고, 치료 와중에 갑작스럽게 아나필락시스 쇼크가 찾아올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이가 겪는 고통은 내가 겪는 마음의 아픔과는 차원이 다를 것이다. 


무엇이 아이를 위하는 일일까. 검사 결과 들으러 갈 날을 앞두고 나는 수능시험을 앞두고 있을 때마냥 배가 아프고 식은땀이 난다. 나였다면, 나에게 알러지가 있었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끊임 없는 고민에 빠져든다.


적어도 아픈 아이가 없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내 잘못으로, 내 잘못된 습관으로 얻는 병이야 어쩔 수 없는거라지만 태어나자마자 아픔을 겪는 아이들은 무슨 잘못이 있단 말인가. 병원에서 집에 오는 길에 남편은 "신은 없다"고 말했다. 신이 있다면, 어쩜 그렇게 잔인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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