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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수정 Mar 13. 2023

전성분 읽는 엄마

'다름', '불공평'에 익숙해지기까지 걸리는 시간

우리가 사 먹는 대부분의 음식들은 포장지 뒷면에 전성분이 기재되어 있다. 아이를 낳고 키우기 전까지는 관심을 가져 본 적도, 꼼꼼히 읽어 본 적도 없다. 하지만 지금은 아이를 위해 모든 음식을 살 때마다 전성분을 꼼꼼히 읽고, 우유와 계란이 들어간 제품은 철저히 걸러낸다. 


익숙한 것은 금방 읽고 이해할 수 있지만, 낯선 것은 읽어도 무슨 말인지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고 되풀이해 읽어도 중요한 정보를 쉽게 놓치게 된다. 처음에 아이 알레르기 때문에 전성분을 읽을 때는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가는 단어들이 너무 많았다. 글루탐산나트륨, 젖산칼슘, 분리대두단백, 카나우바왁스, 토코페롤 등 익숙하지 않은 것들을 읽어내느라 고생을 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니 이 성분이 혹시 우유, 계란이랑 관련이 있는건 아닌지 머리가 아프도록 눈이 빠지도록 고민을 하고 검색을 하기도 했다.


정작 중요한 단어는 놓치기도 했다. 난백 분말, 유청, 분유 등과 같은 진짜 계란, 우유랑 관련 있는 단어들을 놓쳐서 아이에게 먹였다가 아나필락시스가 와서 응급실로 뛰어간 적도 몇 번 있었다. 보통 알레르기 유발물질은 따로 색을 달리해 따로 표기되는데, 간혹 따로 표기되지 않고 전성분에 섞여서 표기되어 있는 경우가 있어 대충 유발물질 표기만 읽었다가 사달이 나기도 했다. 이러니 매번 모든 전성분을 꼼꼼히 읽어야만 내 아이 목숨이 위태로워지지 않을 수 있다.


아이가 알레르기가 있다는걸 안 것은 11개월 무렵이었고, 이제는 7살이니 대충 5~6년 정도를 알레르기 육아맘으로 살아왔다. 이제는 제법 안정화가 되어서 전성분을 읽고 이해하고 걸러내는 데 걸리는 시간도 많이 단축됐다. 어린이집에서 음식 사고를 겪는 일도 지난 2년간 없었다. 매일 도시락을 싸고 대체 간식을 보낸 덕분이다. 식단표를 꼼꼼히 체크하고, 조금이라도 우유나 계란성분이 들어갈 여지가 있는 것은 무조건 대체 음식을 따로 싸서 보낸다. 


꼭 계란말이나 치즈 스파게티 같은 대놓고 우유, 계란 들어간 음식이 아니더라도 소스에 우유가 들어가는 경우가 많은 오리고기나 쉽게 반죽되게 하기 위해 계란이 들어가기도 하는 떡갈비, 돈까스 등의 메뉴도 무조건 대체식을 만들어 보낸다. 간식에 미니롤케익이나 크로와상 같은 빵이 나올 때는 비건 빵을 보내고, 화려한 케이크가 나오는 생일파티날엔 아예 어린이집을 보내지 않거나 비건 컵케익을 먼 동네까지 가서 직접 사와서 보낸다. 매 달 말일 다음 달 식단표가 나오면 형광펜으로 대체해야 할 메뉴를 꼼꼼히 표시해 둔다.


아이가 6~7살 정도 되면 자신이 먹어도 되는 음식과 안 되는 음식을 구분할 줄 알고, 스스로도 낯선 음식은 선생님께 꼭 물어보는 등 조심을 할 수 있게 되어 한결 수월해진다. 아이가 더 어릴 때는 알레르기 케어를 하면서 키우는 일이 참 버겁고 막막하고, 혹시나 사고가 나지 않을까 매일 불안해서 많이 울었는데 이제는 아이가 자라면서 스스로 더블체크를 해주고 증상도 설명해줄 수 있으니 정말 감사할 따름이다.


세상은 원래 불공평하다고 하지만 그 불공평의 주인공이 내가 되었을 때 이를 온전히 받아들이기란 쉽지가 않다. 다른 아이들 다 먹는 맛있는 음식들을 왜 내 아이는 먹지 못하는지, 왜 세상은 알레르기 없는 사람들 위주로만 돌아가서 음식사고의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야 하는 것인지 화도 나고 답답하기도 했다. 지금은 체념하고, 포기하고, 받아들여 가는 중인 것 같다. 


또 나와 내 아이가 처한 상황으로 인해서 잃는 것 반면에 얻는 것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이가 또래 아이들보다 조심성이나 인내심을 많이 기를 수 있게 된 것, 몸에 안 좋은 초콜릿이나 과자 등을 덜 먹고 건강한 간식을 더 많이 먹게 된 것, 알레르기가 없었다면 분명 밖에 나가 일을 했을 내가 집에 머물면서 아이와 함께하는 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 것 등이다. 


최근 놀이치료 선생님께 "아이가 알레르기로 인해 훨씬 더 예민하고, 힘들어하고, 정서적으로 불안할 수 있는데 그런 상황에 비해 굉장히 안전하고 안정적으로 컸으며 엄마와의 애착도 좋은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육아는 처음, 알레르기도 처음이라 좌충우돌하며 비틀비틀 걸어온 것 같았던 지난 시간이 그래도 좋은 결과를 낳고 있는 것 같아 큰 위안이 되었다. 


남편은 "아이는 좋아지고 있고, 앞으로 크면서 더 좋아질거야"라는 말을 자주 해준다. 만약 남편이 더 불안해하고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지금보다 훨씬 힘들었을 것이다. 또 내가 아이를 안정적으로 케어해주는 덕분에 걱정 없이 자신이 일할 수 있다며 고맙다는 말도 자주 해준다. 이런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쌓여 나를 지탱해주고, 가족이라는 이름의 결속력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우리 아이는, 그리고 우리 가족은 점점 더 좋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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