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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수정 Sep 19. 2023

화를 누구에게 돌릴 것인가

일이 잘 안풀리면 화가 난다. 내가 부족한걸 나도 알아서 화가 나고, 이 화를 누군가에게 돌려 내 스스로에게 향하는 내 비난의 화살을 조금이라도 나눠 맞고 싶다. 


아이에게 음식을 건네준 건 내 손이니 여지 없는 내 잘못이고 내 실수다. 울면서 퉁퉁 부어 링거 꽂고 바이탈 체크하는 장비 매달고 누워 있는 아이를 보면 너무 속상해서, 그렇지만 이 큰 잘못을 나 혼자 감당하기엔 나도 나에겐 소중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준 음식을 먹고 아나필락시스가 오거나, 병원 측의 대처가 마음에 차지 않을 때면 남을 쉽게 원망할 수 있다. 하지만 나로 인해 같은 사고가 났을 때는 아, 남에게 내는 화만큼 나에게 고스란히 냈다간 내가 나를 크게 다치게 할 수 있겠구나 싶어 아차 하게 된다. 


완전한 악인도 없고, 모든 일에 실수만 하는 사람도 없다. 내 아이에겐 유당이 들어간 약을 처방해 아나필락시스가 오게 만들었던 의사선생님도 지인의 아이가 아팠을 때는 그 병을 너무 잘 알아주고 돌봐주었던 고마운 은인이었다. 간혹 자신도 모르게 아픈 말로 내 마음을 후벼파 며칠을 앓게 하던 사람이 또 어떤 날에는 우리아이가 먹을 수 있는 간식을 찾았다며 환한 얼굴로 한아름 건네주기도 한다.


쉽게 화를 내고 화풀이를 하면, 언젠가 내가 똑같은 실수를 저질렀을 때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게 될지 모른다. 그리고 거의 100%의 확률로 나도 누군가에게 알게 모르게 그런 실수를 저지른다. 내 일이 아니라면 완전히 공감하거나 이해할 수 없고, 그래서 안그래도 약해져 있을 마음에 상처를 주는 일이 필연적으로 생기곤 한다. 




처음에 글을 쓸 때는 "이런 말들 좀 하지 마세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알레르기는 유전이냐, 너무 까탈스럽게 키워서 그런게 생긴 것 아니냐, 인스턴트를 너무 많이 먹여서 그런것 아니냐, 조금씩 먹다보면 낫는다 등등...


마음이 약해지고 우울할 때는 이런 무심결에 한 말도 마음에 큰 파문을 일으킨다. 하지만 조금 마음이 단단해진 시기엔 그냥 듣고 흘려버릴 수 있다. 커져버린 화에 압도당하지 않으려면, 아니 이미 그 압도적인 화에 갇힌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결국 시간과 함께 우울함과 자책의 터널을 빠져나오는 수 밖에 없다.


누군가가 한 말이 나를 너무 아프게 찌르고, 자꾸 떠올라 어찌할 바를 모르겠던 이 시기에는 정말 비단에 스쳐도 피가 날 지경으로 모든 말에 예민했다. 그래서 그 때 썼던 글들은 모두 피로 쓴 글이다. 누구라도 베어버리겠다는 날카로운 화와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압력이 가득하다. 어디에 내놓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뱉어놓지 않았다면 나는 훨씬 더 오래 아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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