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수정 Sep 21. 2023

갯벌에 빠졌을 때 살아나오는 법

좀처럼 헤어나오기 어려운 상황을 만났을 때 "늪에 빠졌다"고 한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일이 좀처럼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가 있는데, 알레르기도 사실 이런 종류의 질환이다. 크면 나아진다던데, 우유 계란을 아예 차단하면 나아진다던데 검사할 때마다 오히려 수치가 더 올라가기도 하고, 뭐는 먹여봤는데 괜찮더라길래 내 아이도 먹였는데 갑자기 두드러기가 올라오기도 한다. 노력을 해도 나아지기는 커녕 오히려 상황이 악화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얼마 전 여름 휴가철이라 그런지 갯벌에 빠졌을 때 나오는 방법에 대한 기사가 올라왔다. 미리 알아두면 좋겠다 싶어 읽어봤는데, 의외로 방법이라고 나온 것이 "누우라"는 말이었다. 발만 빠져도 당황스러운데 뒤로 벌렁 누우라고? 옷이고 머리카락이고 죄다 뻘이 묻어 지저분해질텐데? 무엇보다 온 몸이 다 갯벌 속에 빨려들어가서 진짜 죽을 것 같은데?


누군가가 댓글로 부연설명을 해주었다. 뾰족하면 더 깊이 들어가듯이, 갯벌 표면에 닿는 면적이 오직 발 두개일 때는 더 깊이 빨려 들어간다. 하지만 누워버리면 갯벌에 닿는 표면적이 넓어져서 오히려 깊이 빨려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누운 상태에서 발을 자전거를 타듯 움직여 서서히 빠져나오면 된다고 했다.


사실 패닉에 빠지면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게 되는데, 이게 늪이나 갯벌에서 빠져나오려고 어떻게든 서서 다리를 움직이는 것과 같은 행동인 것 같다. 차라리 누워버리고, 여력이 되는 만큼 천천히 움직여 차분히 빠져나와야 하는데 그럴 마음을 먹기가 쉽지 않다. 




아이의 아나필락시스를 한 번 겪고 나면 내 마음에 내상이 생긴다. 한동안 다리에 힘이 풀리고 불안한 마음이 진정이 잘 되지 않아 힘들어한다. 이건 나 뿐만 아니라 아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대처만 잘 하면 금방 회복되긴 하지만, 그래도 아이가 자칫 생사를 가르는 선 근처까지 다녀오는 일이다 보니 몸과 마음의 에너지가 바닥이 나 버린다.


이럴 때는 뭘 하고 싶어도 힘이 나질 않아서 며칠간 누워있곤 한다. 최소한의 집안일과 케어만 하고 최대한 휴식하면서 눈물이 나면 울고, 글을 쓰고 싶으면 쓰고, 끌리는 책이나 영화를 보며 지낸다. 특히 '성과'에 집착하지 않으려 한다. 완벽하게 해내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만 해내고 나를 돌보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는다. 내가 회복되어야 아이도 제대로 돌볼 수 있다.


한 때는 억지로 힘을 내려고 나가보기도 하고, 지인들을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해 보았지만 오히려 더 피곤해지거나 별 뜻 없는 말에 혼자 상처받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 내 마음은 내게 필요한 것들을 알고 있다. 가만히 누워서 힘을 빼고, 자연스레 마음 가는 대로 혼자만의 회복의 시간을 갖는 일은 꼭 필요하다.

이전 08화 의미가 있어야만 한다는 강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