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에서는 나에게 닥치는 고통도 다 신의 뜻이며, 내가 알지 못하는 한 차원 높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의미를 지닌다고 말한다. 그래서 힘든 일이 닥치면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이 일을 통해서 신이 이루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된다.
알레르기 문제로 깊은 고민에 빠졌을 때, 한시라도 빨리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내가 무엇을 이뤄내야 이 고통이 그 의미를 다하고 끝이 날까"라는 생각을 했다. 알레르기를 가진 아이들의 고충과 필요를 세상에 알리라는 의미일까 싶어서 마침 한 작가님으로부터 제안이 왔을 때 보건복지부에 보낼 편지를 써보기도 했고, 같은 알레르기를 가진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먹거리들을 SNS 계정에 꾸준히 올리기도 했다. 심지어 누구 하나를 살려내야 내 아이가 나을까 싶어 조혈모세포 기증 신청까지 해두었다. 내게 주어진 미션을 완료해야 아이의 알레르기라는 여정이 끝이 날 것 같았다.
고통을 견딜 수 있는 힘은 이 고통이 갖는 의미를 알고 있을 때 한층 강해진다. 출산의 고통을 견뎌낼 수 있는 것은 이 고통을 겪어내야 사랑스런 아이를 품에 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왜 이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그 끝에 내가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안다면 견딜만한 것이 된다.
하지만 왜 하필 나인지, 왜 생긴 것인지, 어떻게 해야 낫는 것인지, 언젠가 낫긴 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을 땐 패닉에 빠지게 된다. 유전적으로도 가족 내 알레르기가 있었던 사람이 없고, 육아 환경도 딱히 특별할 것 없었는데 아나필락시스가 올 정도로 심한 알레르기가 왜 생겼는지 아직도 모른다. 앞으로 나아질지는 의사선생님조차 알 수 없다고 말한다. 그 패닉에서 빠져나와 그냥 받아들이고 살기까지 5년이 걸렸다.
세상 모든 일에 의미가 있을까? 물론 의미가 있는데 내 수준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차원의 의미일 수도 있겠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기도를 했었다. 왜 하필 나에게, 내 아이에게 이런 일을 겪게 하셨냐고. 혹시 내가 감당할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면 하나님이 착각하신 것 같다고, 제발 그만 좀 해달라고, 사람 잘못 보셨다고 화도 내고 울기도 했다.
이제는 원인을 찾고 의미를 찾는 일은 접어두기로 했다. 나는 할만큼 노력했고, 매일매일 조심스럽게 아이를 케어하고 있다.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강박을 조금 내려놓으니 무겁던 짐이 약간은 가벼워졌다.
힘든 일은, 불행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 나쁜 사람에게만, 벌을 받을 사람에게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대학병원 진료를 가 보면 알레르기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들은 딱히 공통점이 없을 만큼 제각각이고, 저마다 정성스럽게 아이를 케어하고 있다. 그들에게 뭔가 일관된 공통점이 있었다면 "아 나도 이래서 이런 일을 겪는구나"했을텐데 전혀 그렇지 않다.
아무튼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냥 삶은 원래 불공평하고, 의미 없는 불행도 또 도대체 이유를 모를 행운도 간혹 찾아오기 마련이다. 혹시 내가 모르는 내 잘못이 있을지 모른다고? 그럼 뭐 어떤가? 나는 지금 내 온 삶을 바쳐 감당해내고 있는데. 그리고 내 아이도 행복하게 잘 자라고 있는데.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책임지고, 견뎌내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