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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수정 Mar 13. 2023

긴장도 높은 육아, 내가 숨쉬는 방법

엄마가 건강해야 아이도 건강하다

점심시간 무렵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오면 심장이 쿵 떨어진다. 아이가 사레들려 기침이라도 하면 철렁해 핏기가 싹 사라진 얼굴로 아이를 쳐다보게 된다. 새로운 음식을 시도할 때면 행여나 먹고 반응이 오지 않을까 30분 동안은 아이 상태를 주시한다. 가끔 뜬금 없이 나중에 커서 아이가 여자친구가 생기면, 파스타도 피자도 햄버거도 같이 먹어주지 못하는 남친에게 실망하진 않을까? 군대에 가면 알레르기 케어는 어떻게 해야 할까? 수학여행이나 친구들끼리 아이가 여행 간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지? 하며 쓸데 없는 걱정으로 우울해진다.


이렇게 긴장도 높고 부정적인 생각이 쉽게 엄습하는 알레르기 육아 속에서, 나는 가끔은 바사삭 멘탈이 부서지기도 하고 때로는 다 잘 될거라며 무한 긍정을 하기도 하는 파도타기와도 같은 정신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간혹 긴장도가 너무 높다, 부정적이고 우울한 생각에 압도되어 숨을 쉴 수가 없다고 느낄 때 나만의 숨쉬는 방법들이 몇 가지 있다.



완전히 내려놓는 여행

첫째는 여행이다. 대학교 때부터 해마다 여행을 함께 가던 내 친구들이 있다. 결혼하고 나서 한동안은 가지 못했는데, 사랑니 뽑는 수술을 하면서 한 번 아이와 떨어져 본 뒤로는 일 년에 한 두 번은 친구들과 여행을 갈 수 있게 되었다.


내 여행친구는 두 명이다. 한 명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고, 또 한 명은 결혼은 했으나 아이가 없는 딩크족이다. 남들은 셋 다 처지가 다르니 공감대가 별로 없지 않냐고 묻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색다른 시각으로 나를 바라볼 수 있게 되어 굉장히 재미있다.


아이가 알레르기가 있고 불안한데, 여행 가도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오히려 이런 생각을 내려놔야 숨을 쉴 수 있다. 남편에게 1박2일간 아이를 맡기고 떠나면, 어차피 내가 멀리 있어 무슨 상황이 생기더라도 당장 달려올 수 없기 때문에 어느 정도 마음이 내려놓아진다. 오랜만에 혼자의 몸으로, 오롯이 내가 나였던 시절의 친구들과 함께하다 보면 스트레스도 풀리고 긴장도도 많이 내려간다. 나는 사실 일 년에 한 두 번 가는 이 여행을 일 년 내내 가장 손꼽아 기다리고 기대하며 살아간다.


남편은 또래 아이를 키우는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하룻밤 아빠캠프를 열기도 하고, 아이와 버스를 타고 멀리 나들이를 나가기도 하며 이틀을 알차게 보낸다. 물론 남편이 실수로 맥도날드에서 '햄버거'가 아닌 우유 성분이 들어간 '불고기버거'를 주문해 알러지 사고가 날 뻔 한적도 있지만, 다행히 음식을 먹기 전에 나에게 사진을 찍어 보냈기 때문에 미리 확인하고 사고를 피할 수 있었다. 어쨌든, 남편의 용기와 배려 덕분에 '아들과 둘 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남편에게는 의미 있는 일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힐링 여행을 떠난다.



책, 영화 속으로 도피하기

여행은 가끔밖에 갈 수 없다보니, 가장 손쉽게 긴장도를 낮추는 법은 다른 무언가에 몰입해 현실을 잊는 것 뿐이다. 나에겐 책과 영화가 이런 역할을 해주고 있다.


책을 고를 때는 알레르기나 육아에 대한 책은 잘 선택하지 않는다.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도피성 독서를 하는 것인데, 굳이 그 주제를 선택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달러구트 꿈백화점' 같은, 현실이 아닌 가상의 세계 속으로 빠져들 수 있는 책들을 골라 읽고 나면 기분이 꽤 좋아진다. 또 몰입도 최상의 추리소설이나, 우리나라랑 다른 문화를 가진 외국 작가의 소설을 읽는 것도 좋아한다.


영화를 고를 땐 슬프거나 공포스럽지 않은 영화 위주로 고른다. 아무 생각 없이 웃을 수 있는 영화, 영상미가 뛰어난 영화를 보고 나면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 든다. 스트레스가 너무 많이 쌓일 때는 집안일, 다른 일 다 미뤄두고 아이를 등원시킨 뒤 무조건 영화를 한 편 본다. 그러고 나면 어느정도 정신적인 에너지가 채워지면서 하원하고 온 아이도 반갑게 맞아줄 수 있고, 또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꾸준한 운동

운동이 몸에만 좋은 것이 아니라 멘탈 관리에도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날이 갈수록 깨닫고 있다. 나는 취미발레를 3년째 해오고 있는데, 누구나 알다시피 발레는 매우 어렵다 보니 그 시간만큼은 모든 것을 잊고 동작에 집중하게 된다. 


나는 지독한 몸치에 방향치인데, 오히려 이를 정면돌파하며 극복하고 싶어 발레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사를 오면서 한 번 발레학원을 옮겼는데, 이 곳에서 만난 선생님께서 매우 잘 가르쳐주시기도 하고 동네 이웃으로서 많은 정보 교류도 하면서 정서적으로도 매우 큰 도움을 받고 있는 것 같다.


또 아이를 키우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허리나 무릎, 어깨 등에 통증을 달고 살게 되는데 발레를 시작한 뒤로 이런 통증이 싹 사라졌다는 점도 너무 좋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고 하니, 앞으로도 발레는 꾸준히 할 것 같다. 발레 이전에도 벨리댄스, 헬스 등 여러 가지 운동을 시도해 보았지만 결국 가장 잘 맞고 오래 할 수 있다고 느낀 운동이 발레였다. 누구나 자신에게 잘 맞는 운동이 따로 있는 것 같다.




신경정신과, 상담 등의 도움

아이가 한숨을 쉬는 증상 때문에 처음 찾았던 신경정신과에서 지금은 아이의 놀이치료를 꾸준히 받고 있다. 처음에는 나도 마음이 너무 힘들어 함께 진료를 받고 약을 처방 받아 먹었는데, 생각보다 약이 효과가 너무 좋았다. 긴장도가 너무 높아 스스로 어떻게 풀 수 없을 정도로 힘들고 우울했는데, 약을 먹은 뒤로 마음이 잔잔해지고 불안감이 훨씬 적어졌다. 앞으로도 스스로 감당하고 조절하지 못할 정도로 힘들 때는 약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놀이치료를 약 40분 정도 하고 난 뒤, 엄마와 선생님이 1:1로 대화를 한다. 그런데 이 시간이 생각보다 엄청 힐링이 된다. 친구들이나 이웃들, 심지어 남편에게도 쉽게 털어놓지 못했던 부분들을 선생님께 이야기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상당 부분 해소되고 있다. 


주변에 털어놓지 못하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이러이러한 부분 때문에 걱정이 된다"거나 "이런 부분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 "아이가 이런 증상이 있는데 괜찮을까" 등의 주제다. 아무래도 유쾌한 이야기들은 아니기도 하고, 답이 나오는 이야기도 아니다 보니 어디가서 이야기하기가 애매한데, 선생님은 잘 들어주시고 유익한 피드백도 주시기 때문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알레르기 때문에 불안하다고 해서 그 생각에만 매몰되고, 아이 케어에만 100% 올인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금세 번아웃이 온다. 번아웃은 정말 무서웠다. 무기력해지고,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은데 또 그런 내 자신의 모습이 한심해 더 무기력해지는 악순환에 빠져들게 된다. 이런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숨쉬는 시간을 적극적으로 확보할 필요가 있다. 


알레르기는 언제 없어질지 모르니 나는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 중이다. 끝을 안다면 전력질주 해도 되지만, 끝이 안 보일 때 전력질주를 하면 큰일난다. 아이의 알레르기는 벼락치기가 습관이던 내게 오래달리기의 호흡을 가르쳐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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