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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수정 Apr 03. 2023

어차피 다를 거면 '부러운 아이'로

피할 수 없다면 무뎌지는 수밖에

매 월 말일이면 아이의 어린이집 한 달 치 식단표가 온다. 냉장고에 붙여두고 형광펜으로 우유, 계란 성분이 조금이라도 들어가 있거나 들어갈 가능성이 있는 메뉴에 표시를 한다. 그리고 이 식단표에 맞춰 미리 식재료를 주문하고 아이의 점심, 간식 도시락을 준비한다.


모든 친구들이 같은 음식을 먹는 '급식' 상황에서 혼자서만 다른 메뉴를 먹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나 주목 받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던 나였기에, 어쩐지 우리 아이도 그럴 것 같아 마음이 많이 쓰인다. "선생님, 왜 승현이만 다른거 먹어요?"하고 묻는 아이가 꼭 있을 것이고, "나도 급식 말고 이거 먹고 싶은데"라고 말하는 아이도 있을 것이다. 지금이야 어린이집 선생님이 지켜보고 개입도 해주시지만 학교를 다닐 때면 "나 이것 좀 먹어도 돼?"하며 다가오는 아이도 있을 것이다.


이 모든 생각을 하면 어린이집을 보내는 것도, 학교를 보내는 것도 너무 마음이 아프다. 알레르기 없이 태어났더라면 굳이 겪지 않아도 되었을 일들을 겪는 셈이니까, 남들보다 학교가기 힘든 이유 한 가지가 더 추가되어 있는 셈이니까 마음 한 켠이 짠하다.


엄마의 마음으로는, 어차피 남들과 다르게 먹어야 할 바엔 더 맛있는 것을 먹게 해주고 싶다. '우리랑 다른 걸 먹는 애'라기 보다는 '우리보다 맛있는 걸 먹는 부러운 애'가 되는 편이 차라리 낫지 않을까 싶어 도시락에 신경을 쓴다. '최대한 급식 메뉴와 비슷해 보이는 것으로, 안 된다면 더 맛있는 것으로!'가 내 도시락 슬로건이다. '우리랑 달라서 안쓰러워 보이는 애'가 아니라, '뭔가 우리랑 다른데 더 특별하고 좋은 걸 누리는 애'라면 아이 마음도 내 마음도 조금 덜 아플 것 같다.


엊그제 저녁 아이가 초콜릿이 너무 먹고 싶다며, 전에 조금 먹어 보았던 비건 초콜릿 과자를 먹어보았다가 또 두드러기가 났다. 내심 속상했는지 자기 전 평소보다 과호흡도 심하게 하고, 토닥이는 말과 손길도 "나 힘드니까 말 시키지 마"라며 밀어냈다.


어떤 날은 "알레르기 그래 뭐 그거, 조심하면서 잘 지내면 되지. 힘내자!"하며 기운이 넘치기도 하고, 어떤 날은 별 생각 없이 일상의 일부로 무덤덤하기도 하지만 가끔은 밤새 눈물이 멈추지 않는 날도 있다. 아이가 혼자 삭히고 있는 마음이 안쓰러워서, 내가 낫게 해줄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혹시나 어떤 사고가 일어나진 않을지 불안해서, 정말 만에 하나라도 일어나선 안될 최악의 상황이 떠오르는 것을 애써 억누르면서 소리 없이 베개를 적신다.


입방정 떨면, 소문내면 빨리 낫는다는 말이 있어서 나는 오늘도 이렇게 글로 방정을 떨어본다. 이 글이 언젠가는 추억이 되고, 다 나을 거였으면서 엄살을 부렸다는 다소 부끄러운 기억으로 남아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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