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부터 어른인 사람은 없다. 그런데 우리는 왜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아이였던 적이 없는 것처럼 아이를 이해하지 못할까. 그건 마치 내 부모님이 나를 결코 다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일일 것이다. 나는 내 부모님과 정말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왜 내 아이는 나랑 비슷할 거라고 생각하는지. 내 예상대로일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아이가 7살이 되면서 놀이터에서 놀던 친구들이 하나둘씩 학원을 늘리더니 아무도 나오질 않게 되었다. 심심해하는 아이를 위해 문화센터 과학실험 강좌를 신청했다. 평소에 이과쪽 성향을 보였던 면도 있고, 아이들이 대부분 좋아한다는 주변의 추천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는 엄마와 떨어져 교실에서 수업 듣는 것을 극도로 거부했다. 수업은 아예 집중하지 않고 유리창 너머로 비치는 엄마의 모습만 하염 없이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 그만하고 싶다며 연신 고개를 흔들었다. 같이 간 친구는 처음 한 두 번은 엄마랑 떨어지기 힘들어했었지만 이내 적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 아이만은 전혀 적응하지 못한 채 매 번 울기만 해 여간 민망한 것이 아니었다. 수업에도 방해가 되는 것 같아 결국 도중에 환불을 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러던 아이가, 어느 날 어린이집 선생님으로부터 온 "친구가 장난으로 때렸는데 승현이가 자꾸만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이런 태도라면 학교에 가서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라는 내용의 전화에 급히 데려간 킥복싱 체육관에서 180도 다른 모습을 보였다.
평소 태권도, 줄넘기 다 싫다고 거부하던 아이가 또래 아이 한 명 없이 온통 초등부 형아들 뿐인 킥복싱 체육관은 오히려 좋아하는 것이 아닌가. 첫 날 준비운동 하는 모습을 구경하고 좀 따라해 보더니 흔쾌히 다니겠다고 말했다. 다른 형아들의 가슴, 허리께까지 밖에 오지 않는 작은 키를 가진 아이가 자기 얼굴보다 더 큰 글러브를 끼고 솜방망이 같은 주먹을 휘둘렀다. 너무 귀엽고 하찮아서 관장님조차 웃음을 참지 못하실 정도였다.
나는 지금도 이해할 수가 없다. 왜 과학 수업은 무섭고 엄마랑 떨어지기 싫다고 울면서, 시커멓고 커다란 형아들 일색인 킥복싱 체육관은 씩씩하게 잘 다니는지. 아무튼 뭐라도 다닌다고 하니 다행이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이렇게 예측 불가능한 일이 많아서 참 지루할 새가 없다. 지금까지는 나와 붙어 있는 시간이 길고 상호작용도 많이 하니 아이를 꽤 알지만, 커갈수록 아이는 자신만의 세계가 점점 더 커질 것이고 내가 아이에 대해 아는 부분은 점점 더 적어질 것이다. 이 아이가 내가 상상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자랄 것이라 생각하면 너무나 미래가 궁금하고 기대된다.
내가 생각하는 틀에 아이를 끼워맞추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쉽지가 않다. 내가 보기엔 지금 이걸 배워야 좋을 것 같고 미래에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아이 취향과 적성에는 다른 게 더 잘 맞을 수도 있다. 내 고집과 내 평생 쌓아 온 경험치, 지식을 내려놓고 아이 뜻을 존중해주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매 순간 느낀다. 앞으로 얼마나 더 어려울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아마 나는 평생 아이를 완전히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아이와 함께하는 하루하루가 더 소중하고 귀하다. 아마 오늘이 내가 너를 그나마 가장 많이 아는 날이 아닐까. 포켓몬카드와 마인크래프트 장난감만으로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해할 너를 예상할 수 있는 지금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