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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수정 Oct 06. 2023

나는 나를 잃은 적 없다

아이를 낳고 나서 내 이름으로 불리지 않게 됐다, 나를 잃었다는 말들이 많은 공감을 받으면서 엄마라면 으레 그런 느낌을 가져야만 할 것 같은 시기가 있었다. 


당연히 신생아 때는 밖에 나갈 수조차 없이 아이랑 하루 종일 집에만 있다 보니 성인 사람과의 대화가 너무나 절실했었다. '안녕하세요', '라떼 하나 주세요' 이 말 한두 마디라도 하고 싶어서 힙시트로 아이를 안고 동네 카페를 하루 두 번 세 번 간 적도 있다.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하자 내 이름이 아닌 아이 이름을 더 많이 쓰게 됐다. 어린이집 행사에 참석해 이름 쓰는 칸에 자연스럽게 내 이름을 적었다가 "어머님 아이 이름을 적어주세요"라고 하셔서 화들짝 놀라 고쳐 쓴 적도 있다. 밖에 나가도 '애기엄마~'라고 불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내 이름을 불러주는건 가끔 메신저로 대화를 나누는 친구들 정도였다. 지금도 놀이터에서 뛰어 노는 아이 친구들의 엄마들과 '누구누구맘~'으로 서로 부른다. 



내 이름으로 불릴 일이 줄어들었다고 해서 내가 나를 잃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람은 본래 여러 정체성을 가진다. 누구누구의 딸이나 아들, 어느 회사의 직원, 누구의 친구 등등... 육아가 그 가운데 단 하나의 자아, 누구누구의 엄마라는 자아를 너무나 압도적일 정도로 강력하게 만드는 것은 분명하다. 여러 자아가 균형을 이뤘을 때 삶이 풍성해지는데 그 균형이 깨어져 버리니 답답하고 불안해지는 것도 당연하다.


굳이 내가 나를 잃었다고 표현한다는 것은, 그 수많은 자아 중에 새롭게 얻게 된 '엄마'라는 자아가 너무 낯설어 나 같지 않은데다가 갑작스럽게 내 삶을 지배해버리면서 나온 말이 아닐까 싶다. 사실 아이에게 "'엄마'가 이거이거 해줄게~"라고 자연스럽게 말이 나오기까지 몇 달이 넘게 걸린 것 같다. 나는 딸만 해봤지 엄마는 처음이니까, 그리고 내 마음 속에서 난 아직 철부지고 어른으로 불리는 것조차 어색한 다소 나이 많은 청소년 같은 느낌이었으니까. 그 어색하고 낯선 엄마라는 자아가 아이가 나온 그 순간부터 갑자기 내 생활의 대부분의 시간을 차지해버리니, 예전의 나는 싹 다 사라져버린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나는 나를 잃은 적이 없고, 새로운 엄마라는 자아를 얻은 것 뿐이다. 갑작스럽게 내 삶을 압도해 버린 엄마라는 자아에 적응해 가면서, 그 과도기에서 겪은 성장통 같은 것이 바로 나를 잃은 듯한 공허함, 막막함 같은 것들이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잃어버린 예전의 나는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하나씩 돌아오기도 한다. 친구들이 저마다 결혼하고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으면서 더 가까워지기도 하고, 아이 덕분에 새로운 친구를 사귀게 되기도 한다. 예전의 직장으로 복직하는 경우도 있고, 전과 다른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 사회에 다시 나갈 수도 있다. 


다만, 예전 그대로의 나로 회귀할 수는 없다. 초등학교 시절이 그립다고 중학생이 다시 초등학교에 갈 수는 없는 일이다. 결혼하기 전, 아이 낳기 전의 내 화려했던 시절만 그리워하면서 그 때로 돌아가지 못한다고 한숨지어봤자 마치 중학생이 다시 초등학교 가지 못한다고 슬퍼하는 것처럼 부질없는 일일 뿐이다. 설사 돌아간다 해도 절대 예전과 같을 수 없다. 세월이 흘러서 나도 변했고, 사회도 계속 변화하니까.



취미로 성인 발레를 배우면서 원래 뻣뻣했던 나는 스트레칭에 좀처럼 발전이 없었다. 어느 주말 가족이 함께 들을 수 있는 일일 클래스를 신청해 아이와 남편과 함께 참석했다. 누워서 거울에 다리를 올리고 옆으로 쫙 벌려 스트레칭을 하는데, 평소 선생님이 조금만 다리를 눌러도 비명을 지르던 나였다. 그런데 선생님이 아이를 내 양쪽 허벅지 위에 한 발씩 걸쳐 올라서도록 만들자, 행여나 아이가 다칠까봐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고 이를 악물고 버텨내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스트레칭에 괄목할 만한 발전이 있었던 것은 물론이요, 그 날 저녁 허벅지 양쪽에 시커멓게 멍이 든 것을 발견했다. 나는 이렇게 아이를 위해서라면 절대 불가능할 것 같던 것도 얼떨결에 해내는 엄마가 되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는 리프트 타는 것을 굉장히 무서워한다. 케이블카도 바닥이 투명한 것은 타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타더라도 손잡이나 기둥을 꽉 잡고 식은땀을 흘린다. 하지만 지난 주말 원주에 있는 소금산 출렁다리와 울렁다리를 모두 걸어서 건넜다. 밑에서 올려다보면 아찔한 그 높이, 무려 200m, 400m에 달하는 길이에 바람이 불면 흔들리고 울렁거리는 그 다리들을 아이가 앞장서고 있다는 이유로 얼떨결에 모두 건넜다. 내가 안 건너면 저 아이를 누가 집까지 다시 데리고 가겠는가.


아가씨 때의 외모도 날씬함도 이제는 다 잃었지만, 그건 아이가 없었더라도 어차피 잃게 될 것들이었다. 사회생활을 계속 했더라면 내가 얻었을 지위? 그것 또한 아이를 키우는 것 못지 않는 노력이 따랐을 것이고, 아이는 내가 죽는 순간까지 내 자식이겠지만 사회적 지위는 퇴사하는 순간 어느 정도의 흔적만 남길 뿐 내 손에서는 사라졌을 것이다. 


그래서 엄마가 되어 내가 나를 잃었다는 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 아쉽지만 나이가 어려서, 아가씨여서, 신혼이어서 행복했던 시절은 시간과 함께 흘러가는 것이 당연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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