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수정 Oct 06. 2023

모자라면 모자란대로

나이가 들어 뒤늦게 좋아하던 분야에 뛰어드는 분들을 보는 것은 너무나 즐겁다. 최근에 한 영상을 보았는데, 뒤늦게 그림 그리기에 빠진 분이 하신 말씀이 인상적이었다. 어떤 날은 아무리 해도 영 마음에 안 들지만, 그래도 모자라면 모자란대로 그냥 올리신다고. 이렇게 '모자라면 모자란대로' 꾸준히 나만의 필모그래피를 쌓는 것이 얼마나 가치있고 용기있는 일인지 이제야 조금씩 알 것 같다.


완벽한 모습만 보여주고 싶고, 나는 원래 잘난 사람으로 비춰졌으면 좋겠고, 일 뿐만 아니라 육아도 당연히 잘 하는 엄마였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늘 한 구석에 있다. 그래서 글을 쓰고 어딘가에 올리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내가 좀 더 성장한 뒤에는 분명히 유치하고 부끄럽게 여겨질 것이기 때문에. 


'모자라면 모자란대로' 보여주는 일이 참 어렵다. 아이 키울 때도 '모자라면 모자란대로' 받아들이면서 키워줘야 하는데, 모자란 구석이 보이면 꼭 꽉꽉 눌러 채워주고 싶어진다. 수학을 못할 것 같으면 연산 학원이라도 보내야 할것 같고, 한글이 느리면 한글학원을 보내야 할 것 같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우리 아이는 자기 의사 표현이 뚜렷해서 하기 싫은 일은 절대로 안 하려고 한다. 고집이 세고 완강히 거부해서 줄넘기 학원도, 태권도도, 미술도, 구몬도 제안하고 억지로 시켜도 보았다가 전부 그만뒀다. 지금은 놀이터에서 실컷 뛰어놀고, 그래도 포기할 수 없어 보낸 한글학원과 본인이 좋다던 킥복싱 체육관만 다닌다. 


다른 집 아이들이 수영도 하고, 아이스하키도 하고, 수학도 하고, 줄넘기도 하고, 피아노도 하고 등등 여러 가지 배우는 모습을 보면 '우리 아이 이래도 괜찮은가' 싶다가도 어릴 적 내가 다닌 컴퓨터 학원과 미술학원이 내 인생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나를 떠올려 보면 그래, 굳이 억지로 다닐 필요 있나 싶다. 내가 어릴 때 하고 싶어도 못했던 발레를 지금 취미로 하고 있는 것처럼, 아이도 본인이 하고 싶어지면 스스로 찾아 하겠지.


나는 내가 최고로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원래 아이들을 좋아하기도 했고, 어떤 아이를 만나든 대부분 나를 잘 따르고 좋아했다. 심지어 학부 전공도 교육학이다. 하지만 내 자식 키우는 데는 아무 의미 없는 일이었다. 아이 마음을 잘 읽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고, 책은 내가 읽는 것만 좋아하지 아이 읽어주는 일은 귀찮아서 잘 읽어주지도 않는다. 몇 살엔 어떤 학원을 다녀야하고 어느 브랜드가 논술을 잘 하는지도 모른다. 아이가 더 어릴 땐 수면교육조차도 따로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한 시간에 한 번씩 깨는 아이가 아무리 기다려도 그치지 않고 울어서 이러다 큰일 날 것 같아 두 돌까지 꼬박 조각잠을 자며 지냈다. '아이를 능수능란하게 이해하고 이끌어줄 수 있는 엄마'가 될 줄 알았던 착각에서 매일 깨어나는 중이다.


그래서 아이가 큰 뒤에 "내가 너를 이렇게 키웠다", "내가 이렇게 키워줘서 네가 이만큼 됐다"는 말은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냥 "너는 네가 알아서 잘 크더라"하고 말해줘야 할 것 같다. 그렇게 내 공을 포기하는 대신 아이가 있어서 덕분에 누릴 수 있는 것들을 야무지게 챙기려 한다. '아이와의 추억', '아이의 경험'을 빌미로 한 여행과 각종 유흥들은 놓치지 않으려 한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 무슨 글인지, 중구난방 같아도 제목과 취지에 맞게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그냥 내보내련다. 원래 사람의 생각은 여러 자아가 시끄럽게 떠들어대서 다 중구난방이다. 









이전 17화 나는 나를 잃은 적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