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실패했다. 어떤 직장은 튼튼하지 못했고, 정규직이 아니었고, 새로운 일은 몇 년이 지나도 괘도에 오르지 못했다. 덕분에 또 많이 여행했다. 러시아로, 우즈베키스탄으로, 미국으로, 아프리카 가나로 떠날 수 있었다. 실패하지 않았다면? 좋은 직장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바쁘게 살아갔다면? 많은 긴 여행을 떠날 수 있었을까? 인생의 실패는 모두 찬란한 시작이다!
'승진이라는 척도에서 실패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승진을 성공의 척도로 두면 어느 순간 승진에서 누락되어 퇴직하므로, 모든 사람들은 실패를 경험한다. 정년퇴직한 사람들은 무척 똑똑한 사람들이다. 경쟁의 사다리에서 끝까지 머물렀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들이다.' 어느 책에선가 나온 내용이다.
실패하지 않았다면 계속 달렸을 능력 있는 사람들이, 타의나 상황에 의해 어느 날 멈춰 선다. 화나고 의기소침하지만, 다음 길을 모색한다. 경험을 살려 사업을 하고, 자영업자, 택시기사가 되기도 한다. 자원봉사를 하고, 삶에서 얻은 지혜, 실패를 성찰하는 글을 쓰기도 한다. 실패한 모두는 새로운 삶을 찾아 항해를 떠난다.
인생이 주는 신호!
이런 변화가 인생 중간쯤일어났다.
실패가 인생이 주는 신호라는 걸, 그때는 몰랐다.
그저 운이 없고, 실력이 부족하고, 충분히 성실하지 않은 나를 탓했고 실패에 침잠했다.
때로는 능력이 부족했고,사회적 시스템이었고, 무엇보다 나와 맞지 않았다.
실패는 '그 삶은 당신과 맞지 않군요', 자아가 보내는 신호였다.
처음부터 맞지 않았을까?
그 길도 과거의 순간, 여러 가지를 고려하여 선택한 최선이었다.
애초에 인생에 맞는 역할, 맞지 않는 역할 같은 건 없는지 모른다.
선택한 순간에는 최고의 역할이,
시간이 지나 지루해지고 다른 역할이 더 좋아 보인다.
다음 역할로 가야 할 순간이 있을 뿐이다.
'이제는' 나와 맞지 않는 역할을 하니,
별로 즐겁지도 잘하지도 못한다.
실패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20대 첫 배낭여행을 마치고, 문헌정보학과 대학생 역할이 아닌 것 같다는 마음의 목소리를 따라 러시아로 떠났다. 모스크바 한해여름, 가이드 알바를 경험했다. 여행은 좋아하지만 여행사 직원은 맞지 않았다. 무역회사 직원 역할도 하고 우즈베키스탄 자원봉사자 역할도 했다. NGO 활동가로, 코이카 전문가로, 프로젝트 어브로드 지사장으로, 다시 아프리카 가나 코이카 전문가로참 많은 역할을 했다. 실패가 많아 경험할 수 있던 다양한 역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