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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이 멈출 때까지

명랑주의자의 사생활

by 림태주


아빠들이 딸을 예뻐하는 이유는 천만 가지도 넘는다. 그냥도 이쁘고 아무 짓이나 해도 이쁜데 거기다 요망하기까지 하다. 친구처럼 굴기도 하다가 애인인양 굴기도 하다가 잔소리꾼 엄마가 되기도 한다. 예뻐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그런데 정작 나는 '딸'이라는 말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딸의 어원에는 여러 설이 있다. 모계사회에서 어미를 '안 따른다'고 하여 '아들'이라 하고, 잘 '따른다'하여 '딸'이라고 했다는 설이 있다. 웃기지도 않는다. 안 따르는 걸로 치면 딸이 더하다. 조금 근거 있어 보이는 설은 '씨앗(종자)'에 기원을 둔 해석이다. 아들은 씨앗을 받다의 '바달'에서 유래했고, 딸은 열매를 따다의 옛말 '다달'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나는 이런 식물적인 해석이 마음에 든다.

어쨌거나 세상 사람들이 '딸'이란 말을 정겨워하며 사용하지만, 나는 딸 대신에 '도채비'라는 말을 사용한다. 도채비는 도깨비의 여러 방언 중 하나다. 도깨비는 예로부터 "금 나와라 뚝딱!"하며 풍요를 상징하기도 하고, 수시로 둔갑하는 놀라운 재주도 지녔으니 딱 딸애에게 알맞다. 도깨비의 의미를 알려면 ‘돗가비’의 어원 형태를 이해해야 한다. 돗가비는 ‘돗’과 ‘아비’의 합성어이다. 돗은 불火이나 곡식의 씨앗, 즉 종자種子를 뜻하고, 아비는 말 그대로 아버지를 뜻한다. 즉 도깨비는 생산력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어 신격화해 제사를 지내기도 했던 것이다.

도채비가 많이 어렸을 때였다. 내 왼쪽 가슴에 머리를 대고 눕더니 조금 후에 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묻는 것이었다.

"아빠, 어디로 떠나?"
어디로 떠나다니? 나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괴수에게 아빠를 빼앗기는 무서운 동화책을 본 것인가, 아니면 아이의 잠재의식 속에 아빠와 언젠가는 헤어질 거라는 분리불안 같은 게 숨어있는 건가 싶어 나는 걱정스럽게 물었다.
"아빠가 떠난다는 게 무슨 말이야? 왜 그런 생각을 했어?"
도채비는 아무 일 아닌 듯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아빠 가슴에서 쿵쾅쿵쾅 기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려. 그래서 어디 가냐고 물은 거야."
나는 빙그레 안도하며 도채비에게 말해주었다.
"아빠 심장 안에는 우주만큼 널따란 기차 정거장이 있어. 날이 저물면 햇님도 산 너머 침대에 들어가 잠을 자는 것처럼 기차도 나갔다가 돌아와 잠을 자는 거야. 아침에 나갔던 것들은 저녁에 다 돌아와. 아주 떠나는 건 없는 거야. 그러니 걱정하지 마. 알았지?"
도채비는 그제야 안심한 듯 내 가슴에 엎드려 쌔근쌔근 단내를 흘리며 잠들었다.


우리가 딛고 사는 땅이 세월호의 선실 같아서 불안하다. 아침에 나가면 저녁에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지 두렵다. 아이들을 생각하면 목이 메여 밥이 잘 넘어가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아빠들은 그래서 매일매일 자신의 도채비들에게 굳은 약속을 수없이 한다. 언제나 너희 곁에 있겠다고. 심장이 멈추는 날까지 너를 지켜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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