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보이는 우체국에서 쓴다
참담한 뉴스를 봤다. 불법으로 자사 책을 사들여 베스트셀러 순위를 조작해 자기 배를 불린 사람의 쓸쓸한 얘기. 책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부끄럽고 외롭고 가여워 고개를 숙였다.
어떤 직업이든 직업의 윤리가 있고, 직업이 존속하기 위한 원칙과 묵계가 있다. 그것을 지켜가는 것이 직업정신이다. 그것이 세월을 지나며 존경을 얻고 역사를 더하면 쟁이의 철학이 된다. 사람은 가도 장인의 명성은 남아 오래도록 회자 되고 직업의 철학은 숭앙받는다.
그 철학이라는 것이 위대하고 거창한 것이 아니다. 기실 위대한 것들은 지극히 평범하고 원칙적인 것들이다. 그래서 쉽게 사라지지 않고 생명이 긴 것이다. 우리가 무슨무슨 직업인의 이름으로 살려고 할 때 삼가야 할 것과 지켜야 할 것과 실천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다 아는 것들이다. 지켜야 할 도리를 가슴에 지니고 살아가면 품격이 생긴다. 출판인 뿐만 아니라 정치인이 그렇고 법조인이 그렇고 성직자가 그렇다. 그것이 없으면 무슨무슨 꾼이나 업자로 전락한다.
출판업자가 아니라 출판인으로, 정치꾼이 아니라 정치인으로 존중받으며 살아가고 싶다면 이것 한 가지를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각자 한 사람이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시간을 켜켜이 쌓아 이룩한 직업의 신의와 고귀함을 단 한 순간에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무서운 사실을 말이다.
깊은 산 속 옹달샘은 누가 와서 먹는가? 새벽에 토끼가 눈 비비고 일어나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간다고 아이들 동요에 나온다. 맑은 물이 더렵혀질까봐 다른 생명들도 마셔야 할 물이기에 일찍 일어난 토끼는 자신의 이기심을 억누르고 물만 먹고 가는 것이다. 옹달샘은 모두를 살리는 공유재산이기 때문이다.
출판인은 독자가 원하는 책을 정성껏 만들면 되고, 서점인은 독자가 그 책을 편리하게 만날 수 있는 쾌적한 공간을 제공하면 된다. 독자가 고마워하고 행복해지면 종사자들은 즐거운 보람을 얻고 따뜻한 밥을 얻게 된다. 이 근원적인 순환 안에 위악이나 강제나 편법이 끼어드는 순간 책도 직업도 아름다움도 사람도 사라진다.
그토록 값없고 하찮은 업자로 살아서 무슨 영광을 이 세상에 남기고 가려하는가? 이 숨을 곳 없는 찬란한 오월에 나는 엎드려 묻는다. 옹달샘을 더럽히는 당신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