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림태주 Jul 22. 2017

지혜는 입이 아니라 귀에 있다

명랑주의자의 사생활


인연 따라 오고 간다는 말이 있다. 누군가가 내게 오는 것도 인연 때문이고, 누군가가 나를 떠나 가는 것도 인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인연이 하는 일은 많다. 어디라고 콕 짚어 말하기 어려운 몸의 쇠락이 느껴지는 때가 있다. 이 잔잔한 쇠락의 서글픔은 몇 알의 알약으로 다스리기 어렵다. 내가 미처 보살피지 못하고 지나쳐온 인생의 회로를 전체적으로 살펴줄 눈길과 끊어지고 약해진 곳을 수선해 줄 손길이 필요하다. 그 눈길은 자연의 이치를 헤아리는 지혜를 의미하고, 손길은 아파야 비로소 자기를 돌아보는 사람의 어리석음에 대해 갖는 연민을 의미한다. 그 자애롭고 지혜로운 현자를 찾아나서는 나의 발길이 또한 인연이다. 그러므로 인연이란 길이다. 내가 만나는 사람이 곧 내가 가는 길이라는 의미다.

자꾸 몸이 서글퍼졌다. 인연을 따라 현자를 만나러 갔다. 어디가 아프냐고 한 마디도 묻지 않으셨다. 선생은 말없이 진맥만 하셨다. 맥을 한참 짚고 나시더니 내가 살아온 아픈 내력을 줄줄이 풀어내셨다. 선생이 정성들여 약을 달여주겠노라고 안심시켰다. 며칠 탕약을 먹으니 입맛이 돌고 깊은 잠이 왔다. 어제는 침을 맞으러 갔더니 포옹으로 맞아주셨다. 상쾌한 침을 뽑은 후 선생이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어느 나라에 농사짓는 가난한 총각이 있었다. 이웃 마을에 마음에 둔 아가씨가 있었다. 그녀에게 장가 들고 싶어서 찾아갔다. 아가씨가 총각에게 말했다. 말 두 마리와 소 다섯 마리를 가져오면 결혼 하겠노라고. 가난한 총각은 말과 소를 사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수십 년을 열심히 일해도 그만한 말과 소를 얻기가 힘들었다. 늙어버린 농부가 밭을 갈다 쉬고 있을 때 한 무리의 아이들이 다가왔다. "할아버지, 재미난 얘기 좀 해주세요." 농부는 아이들에게 신세 한탄을 했다. 나는 말 두 마리와 소 다섯 마리를 얻지 못해 아직도 장가를 못 가서 슬프다고. 그 중에 한 아이가 농부에게 말했다. "아이참, 할아버지는 답답하셔. 말 두 마리와 소 다섯 마리는 '두 말 하지 말고 오소' 그 뜻이잖아요."

선생이 이야기 끝에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맥을 짚는 사람이다. 맥을 짚으면 다 알게 되니 아픈 이에게 어디가 아프냐고 묻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항상 말했고 자주 듣지 않았다. 입은 지식이고 귀는 지혜라는 말이 있다. 그러므로 나는 지식은 있으나 지혜는 모자란 사람이 되었다." 선생의 말을 듣고 나오는데 침 맞은 자리마다 비수가 꽂힌 듯 아파왔다. 가난한 사람은 가난할 생각 때문에 망하고 아픈 사람은 아플 생각으로 더 고통 받는다. 내가 듣고 싶은 대로 곡해하지 않고 상대가 하는 말의 진의를 잘 새겨 들을 줄 알면 살 길이 열린다. 지혜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오늘 내게 와서 말하는 사람의 말을, 잘 들으면 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