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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태주 Jul 01. 2018

관계 날씨가 흐릴 때 챙겨야 할 것

삶과 관계의 균형에 서툰 당신에게

오늘의 날씨, 맑음.


어렸을 적 일기쓰기 숙제를 할 때마다 궁금한 게 있었다. 왜 일기장 맨 첫머리에 오늘의 날씨부터 써야 하는
걸까? 혹시 그것은 오늘의 날씨가 아니라 내 마음의 날씨를 적어보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오늘의 기분은 선인
장에게도 고양이에게도 아스파라거스에게도 중요하니까. 특히나 어린아이의 그날 기분은 엄마의 하루를 좌우
함은 물론 지구의 평화와 우주의 안녕에도 영향을 미칠 테니까.


몸살 중에서
사람 몸살이 가장
지독하고 끄기도 어렵다

어른이 되고 나서 나는 다이어리에 오늘의 관계 날씨를 적는 습관이 생겼다. 대체로 맑은 날이 많지만, 간혹 흐리고 바람 부는 날도 있다. 오래전 오늘 날짜의 다이어리에는 ‘J와 흐림. 약간의 거리를 둘 것’이라고 적혀 있다. 며칠 뒤에는 J와의 거리 두기에 실패했는지 이렇게 적혀 있다. ‘거리를 두고 다가갔으나 체감온도가 10도쯤 내려갔음. 싸늘해져서 소주로 열을 끌어올리다 몸살로 앓아누웠음. 몸살 중에 사람 몸살이 가장 지독하고 끄기도 어려움.’



오늘의 기분이 오늘 하루 만에
뚝딱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서

사랑해보지도 못하고 실연당한 것이 분명했다. 왜 J를 짝사랑하게 됐는지 궁금해져서 나는 앞 페이지들을 부지런히 넘겨보게 되었다. 왜냐하면 관계의 날씨는 실은 오늘의 날씨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의 날씨는 어제와 그제, 그그제의 구름과 바람과 기온의 결과다. 오늘의 기분은 여기 오늘 하루 만에 뚝딱 생성된 기분은 아니라는 말이다. 오늘의 관계 날씨는 관계의 전후 맥락을 살펴야 비로소 진짜로 맑은지 흐린지 알 수 있다.



나의 관계 날씨는
당신의 관계 날씨에 영향을 받는다

가령, ‘오늘은 맑음’이라서 ‘좋음’이라고 덧붙이지만, 오늘이 긴 가뭄의 하루에 속한다면 오늘이 맑다 해도 그건 결코 좋은 날씨는 아닌 것이다. ‘오늘은 비 내리고 흐림’이지만 긴 가뭄 끝에 만나는 비의 날이므로 ‘이보다 좋을 수는 없음’이라고 기록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나의 관계 날씨는 당신의 관계 날씨에 영향을 받는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관계는 단순하게 오늘 당장의 현상만으로 단정할 것이 못 된다. 누적된 시간의 두께와 구성된 사건의 인과를 살펴야 실체가 보인다. 그것을 문학에서는 추억의 힘이라고 하고, 역사학에서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하고, 과학에서는 질량불변의 법칙이라고 이른다. 관계가 촘촘하고 든든해지면 어떤 화학 반응이 일어나도 믿음의 양은 줄지 않는다. 바람이 불고 흔들리는 날이 있어도 관계는 함께한 시간의 힘으로 버티고 나아가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이제 안다. 오늘의 날씨에 너무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맑거나 흐리거나 비가 오거나는 내 마
음의 기압골이 결정한다. 물론 당신의 기류가 변수지만.





<관계의 물리학> 바로가기 http://bit.ly/2FDoaZ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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