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의 기준

풍부한 삶을 사는 법 : 오감 깨우기

by 임작가의 잡생각들

우리 모두는 아름답다. 맛을 뜻하는 미()에 대해 글을 쓰려고 한다.


풍부한 삶을 위한 첫 번째 조건, 경험


얼마 전, 이자카야에서 안주로 10종 숯불 꼬치를 먹었다. 다양한 종류의 꼬치 중 구운 고추 꼬치가 있었다. 일행 중 한 명이 이를 집어 먹었고 맵다고 얘기했다. 나는 매운 음식에 도전하는 것을 즐긴다. 호기심을 안고 바로 구운 고추 꼬치를 집어 먹었고 매운맛이 내 입안을 강타했다. 매운 음식을 못 먹는 일행 한 명이 많이 맵냐고 물어봤고 다른 일행은 구운 고추는 매울 수 없다고 얘기했다. 나는 고추를 삼키며 힘겹게 얘기했다.

'맛있는데?'

고추를 먹어보지 않은 사람이 이 광경을 보면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 입 안에서 느껴지는 고추의 매운맛과 매운맛의 고통, 매운 고추를 보고 침이 도는 입 안. 그 무엇도 느낄 수 없다. 그렇다. 오감 중 하나인 미각은 경험해 봐야만 알 수 있는 감각이다.


풍부하지 않은 표현들과 우리의 삶


맛을 표현하는 단어는 다양하다. '달다, 쓰다, 짜다'와 같은 기본적인 표현이 있다. '담백하다, 삼삼하다, 닝닝하다'와 같이 고차원적인 표현도 있다. 맛과 관련된 단어들은 오직 경험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고추가 뭔지 물어본다면 '세로로 긴 원뿔 모양의 식물' 정도로 알려줄 수 있다. 하지만 고추의 맛에 대해 물어본다면 살짝 난감하다. 매운 고추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맵지 않은 오이고추의 맛을 물어본다면 설명하기 많이 난감하다.


친한 친구 중에 편식을 하는 친구가 있다. 이 친구는 취사병 출신임에도 먹지 못하는 음식이 많다. 오이,

수박, 당근, 족발, 순대 등등. 읽었던 글에 따르면 오이를 먹지 못하는 사람은 쓴 맛에 강하게 반응하는 유전자를 갖고 있다고 한다. 친구 말에 따르면 족발은 냄새 때문에 못 먹고 오이는 쓰며 수박은 오이와 맛이 비슷해서 못 먹는다고 한다. 족발 가게에 같이 갔을 때 구석에서 야채(오이, 당근, 상추)를 다 빼고 막국수 면만 먹는 친구 모습이 조금 안쓰러웠다.


나이를 먹으면서 사람은 입맛이 변한다. 나는 아메리카노를 마시게 되었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글을 쓰는 지금, 모니터 화면 하단에는 웹 브라우저인 크롬의 아이콘이 보인다. 태풍의 눈처럼 생긴 크롬의 아이콘은 빨강, 연두, 노랑, 파란색으로 이루어져 있다. 크롬의 아이콘을 아는 사람은 대부분 이 문장에 동의할 것이다. 다음 문장은 어떨까? 아메리카노는 청량하다. 아메리카노를 마셔본 사람 대부분은 이 문장에 동의할까?


맛의 기준은 너무나 애매하다. 누구에게는 청량한 아메리카노는 누구에게는 미치도록 쓰기만 하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똑같은 음식을 먹어도 모두가 다른 맛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청량한 맛을 느끼는 사람도, 쓴 맛을 느끼는 사람도 완전히 다른 맛이지만 입을 모아 아메리카노 맛이라고 표현한다. 시원하고 달콤한 수박을 먹지 않으면 여름을 버틸 수 없는 사람도 있지만 수박 자체를 먹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전 세계 인구는 80억 명을 넘어섰다. 80억 명이라는 엄청난 수의 사람 중 복사를 한 것처럼 똑같은 사람은 없다. 이 말은 하나의 음식에 80억 가지의 맛이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사탕과 초콜릿이 단 이유는 맛을 표현하는 단어가 80억 개나 되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 우주의 광활함을 느끼고 초라해진 인간이라는 존재가 다시금 하찮아졌다. 태어날 때부터 보유한 오감이라는 엄청난 능력을 제대로 표현하지도 못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깝다. 오감을 깨우고 다양하게 표현하면 삶의 질이 올라가고 삶이 풍족해진다. 하지만 풍부하게 표현될 수 있는 맛이라는 존재가 '달다, 쓰다, 맵다.' 등으로 단순화되어 표현된다.


아직은 갈길이 멀다.


처음 아메리카노에 눈 뜨게 된 상황은 지금 생각해도 기가 차다. 과거의 나는 아메리카노를 왜 먹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느 날부터 하루 평균 두 잔의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사람과 어울리게 되었다. '차를 마신다고 생각하고 마셔봐.'라는 말을 듣고 아메리카노를 마시기 시작했고 커피에 푹 빠지게 되었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 맡게 되는 커피 향은 내 기분을 좋게 한다. 삶이 풍족해진 것이다. 웃긴 것은 커피 향이 무슨 냄새냐고 물어보면 커피 향이라고 밖에 설명을 못 한다는 사실이다.


그 이후로 오감을 발달시키는 연습을 하고 있다. 길을 걸을 때는 이어폰을 뺀다. 다양한 소리를 들으며 귀를 의도적으로 자극한다. 식당에 가면 늘 먹던 음식이 아닌 새로운 음식을 시도해 본다. 다양한 경치를 보기 위해 휴대폰은 잠시 넣어 둔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오감 깨우기 얘기를 했더니 달라진 게 있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그래도 사탕은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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