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5살 첫째가 이것저것 스스로 써본다. 나는 글씨를 쓴다는 것 자체보다도 예쁘게 쓰는가를 더 집중해서 보게 된다. 5살이 예쁘게 쓸 수 없는 게 당연한 것인데도 그렇다. 그건 내가 글씨를 잘 못쓰기 때문이다.
"넌 마음이 삐뚤어져서 글씨를 못쓰는 거야! "
어릴 때 엄마한테 혼날 때면 종종 듣곤 했다. 글씨를 못써서 혼난 게 아니라 다른 잘못을 했는데도 끝에 글씨 이야기가 나왔다. 그만큼 난 어릴 때부터 글씨를 정말 못썼다.
일단 자세부터 글러먹었다. 똑바로 앉아서는 글씨를 쓸 수 없고 약간 기울어진 자세여야 하고 그게 아니면 글씨를 써야 하는 노트가 기울어져있어야 한다. 똑바로 앉아서 바르게 놓인 노트에 글씨 쓰는 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 모르겠다. 그래서 내 글씨는 오른쪽 위로 날아간다.
내가 보통의 여자아이들처럼 글씨를 예쁘게 쓰지 못한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학교 다닐 땐 부끄럽거나 당황스럽지 않았다. 내 글씨를 남에게 보여주는 일이 시험 볼 때 주관식 답안지 쓰는 거랑 친한 친구에게 필기 보여줄 때 밖에 없었으니 부끄러울 일이 없었다.
주관식 답안은 아주 짧으니 상관없고 친구끼리 부끄러운 게 없었으니까.
대학교를 논술전형으로 합격한 후 내 제일 친한 친구 중 한 명은 어떻게 너 글씨로 논술을 붙냐며 놀랐다.
나는 그 말이 기분이 전혀 나쁘지 않았다. 맞는 말이었다.
그런데 대학교에 입학하고선 글씨를 못쓰는 게 엄청 부끄럽고 불편해졌다. 선배, 동기, 후배 등 알고 지내는 사이가 늘어나게 되면서 그렇게 친한 사이가 아니어도 필기를 보여주거나 책을 빌려주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최대한 빌려주지 않으려고 했지만 어쩔 수없이 빌려줘야 할 때면 글씨 때문에 너무 부끄러웠다. 그리고 시험 답안을 아주 빨리 많이 정확하게 써야 하는 과에 다닌 덕분에 교수님이 알아보게 쓰느라고 엄청 고생을 했다. 한자를 쓰면 점수를 잘 준다는 수업에선 한자를 써보려다가 잘 쓰지 않으면 점수를 오히려 깎는다는 말에 깔끔하게 포기한 적도 있었다. 당연하게도 이때부터 내 글씨는 나의 콤플렉스가 되어버렸다.
나는 왜 회사에 다니면 타자만 잘 칠 줄 알면 된다고 생각했을까. 전혀 아니었다. 생각보다 직접 글씨를 써야 하는 경우가 정말로 많았다. 처음엔 그래도 다행이었다. 우리 팀 사람들만 내가 글씨를 못쓰는 걸 알고 놀렸으니까. 내가 전 직원이 다 아는 악필이 된 건 어떤 행사 때문이었다. 신입사원들을 위주로 해서 나도 참여하게 되었는데 내가 맡은 일은 하필이면 정말 어이가 없게도 사장님과 함께 글씨를 쓰는 거였다. 어쩜 그럴 수가 있는지. 떨리는 마음으로 한 자 한 자 나름 예쁘게 썼는데도 담당하던 선배가 놀리기 시작했다. "너 글씨 좀 배워야겠다".
글씨를 잘 쓰려고 인터넷 강의도 들어보고 책도 보고 했지만 좋아지지 않았다.
나는 그걸 시간이 없어서라고 결론을 지어버린 후 여유가 생기면 학원을 다녀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다짐을 첫째 육아휴직 후 복직 전 여유가 있을 때 실행에 옮겼다. 글씨로 고민하는 사람이 많은지 글씨교정 전문 학원도 있었지만 한 달에 40만 원 정도로 너무 비쌌다. 그곳은 대부분 어린이들이 다녔는데 이 정도 가격을 지불하고 애들 글씨를 고치려 한다는 게 문화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나도 어릴 때 고치지 못해서 지금 것 이 고생을 하고 있으니 효과만 있다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다니는 것도 괜찮겠다 싶다. 결국 난 근처 켈리그라피 학원에서 글씨 교정도 해준다는 광고를 보고 그곳으로 갔다. 가격도 4번 수업에 10만 원으로 이 정도 가격은 지불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한 달만 다니고 아이가 어려서 오기 힘들다는 핑계로 그만둬 버렸다.
왜 한 달만 다녔냐면 그 학원은 글씨교정을 위한 곳이 아니라 켈리그라피 전문 학원이라 나 빼고 모두가 아주 아주 글씨를 잘 쓰고 더 나아가 글씨로 예술작품을 만들던 곳이 었어서 나의 존재가 너무나 뜬금없고 웃기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다 큰 성인이 가나다를 노트에 쓰고 있는 게 얼굴이 벌게질 만큼 부끄러웠다.
그렇게 학원을 그만두고서도 미련을 끊지 못하고 악필교정 책을 또 사버렸지만 이 핑계 저 핑계로 열심히 하진 않았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다른 사람 앞에서 글씨를 쓸 일이 생기면 등에 식은땀부터 흐른다. 아이들의 엄마로서 어린이집 서류 등등에 직접 글씨를 써야 할 일이 이렇게 많은 줄 알았다면 그때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더 열심히 했을 거다. 한 번을 제대로 고치려 하지 않고 30대 중반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여전히 나의 콤플렉스다.
글을 쓰고 보니 고칠 수 있는 기회는 많았구나 싶다. 정말 마음이 삐뚤어져서 글씨가 그걸 나타내는 걸까.
나는 콤플렉스 덩어리라 뭔가 하나라도 덜어내야 하는데 이거라도 고치려면 마음부터 바로 잡아야 하나. 아이들이 컸을 때 우리 엄마 글씨 진짜 못쓴다라고 생각하면 안 될 텐데. 하지만 이것만큼은 고치려는 노력하기가 왜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