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도 나만의 시간이 필요해
남편을 엄청 사랑하지만
여보 침대를 서재로 옮기고 거기서 자는 게 어때?
드디어 이삿짐이 집으로 온 날 침대가 두 개가 되자 남편에게 조심스럽지만 강력하게 이야기했다.
타협의 여지는 없다는 표정으로
아이들과 같이 자는데 남편이 함께 있으면 너무 좁고 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아주 아주 절실하게
나에게는 아이들이 잠들고 난 후 새벽 2시까지의 시간이 하루 세끼 밥 먹는 것보다 소중하다.
아침부터 아이들이 잠들 때까지 엄마로서의 나로 충실하다면 이 시간은 완전한 내가 된다.
아이를 돌보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면 내가 하고 싶은걸 전혀 할 수 없다.
이게 불행하다거나 슬픈 건 아니다. 아이들과 있는 것도 행복하고 재밌다.
단지 단순한 생활 패턴이 계속되면 지루해지고 그게 내 삶의 활력을 점점 줄어들게 할 뿐이다.
사람이 사는데 내가 하고 싶은 목표가 있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아이들을 돌보는 건 행복하고 내가 잘 해내야 할 의무이지만 아이들의 성장이 내 목표가 될 순 없다.
아이들은 스스로 잘 성장한다.
내가 의무만 충실히 이행한다면
나의 목표는 오로지 나와 관련된 것이어야 한다.
목표는 내가 이루고 싶은 것이 될 수 있고, 그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될 수 도 있다.
매일 웹툰을 보며 작가들의 상상력과 탄탄한 스토리에 감동받는 것도 나에게는 하루의 작은 목표다.
그리고 영어를 유창하게 하게 되던,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던, 글을 잘 쓰게 되던
그 무엇이던 이걸 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결혼 후 당연하듯 항상 남편과 함께 했다.
아이들을 재우고 나면 드라마도 같이 보고 대화도 하다가 남편마저 잠들면 옆에서 조용히 휴대폰을 하는 생활
덕분에 눈이 엄청 나빠졌지만 이걸 포기할 수 없었다.
나는 왜 낮에 틈틈이 하거나 남편이 깨어있을 때 뭔가를 하지 않고 모두가 잠든 후에 하려고 할까?
나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이 버릇이 완전히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해서였다는 걸 깨달은 건
남편이 없는 5개월 동안이었다.
작년 12월 남편이 먼저 말레이시아로 출국하고 나는 5개월을 한국에서 아이들과 남아있게 되었다.
당연히 남편이 너무나 필요했던 순간들이 많았다.
매일매일 보고 싶다고 전화하고 사진 보며 그리워했지만
아이들이 잠들고 난 후 혼자 있을 때만큼은 너무나 행복했다.
나의 사부작 거리는 소리에 남편이 깰까 봐 걱정하며 옆에서 조용히 휴대폰을 하는 게 아니라
그 고요한 밤, 아늑한 조명 아래서 내가 하고 싶은걸 마음껏 했다.
어느 날은 책을 읽고 어느 날은 재밌는 TV 프로그램을 보고 또 어느 날은 공부도 하며 완전한 내가 되는 시간에 흠뻑 빠져 있었다.
이렇게 내가 하고 싶은걸 마음껏 한 날은 다음날 기분이 너무나 좋았다.
상쾌하고 내 몸의 배터리가 충전된 느낌
남편을 다시 만나고 다 함께 잠든 첫날 나 때문에 자꾸만 깨는 남편을 볼 때 방을 분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새벽에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걸 마음껏 하고 싶어
이삿짐이 도착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리고 이삿짐이 도착하던 날 단호하고 아주 자연스럽게 남편의 방을 분리시켰다.
재택근무를 위해 업무용으로 쓰던 방에 침대와 옷가지를 넣어주고 이제 다른 거 신경 쓰지 말고 푹 자라고 해 주니 마지막 퍼즐을 맞춘 듯 속이 시원하다.
남편은 섭섭해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다 같이 자기엔 좁고 아이들은 새벽 늦게 한 번씩 깨서 내가 없으면 울기 때문에 별도리가 없이 받아들인다.
처음엔 아쉬워했지만 며칠 푹 자고 나니 내심 만족스러운 듯 나에게 너무 늦게 자지 말라며 한소리하고 자연스럽게 자기 방으로 들어가고 있다.
내가 새벽을 마음껏 즐긴다는 걸 알고는 있나 보다.
여기에 아이들이 자고 있는 방 바로 옆에 나만의 공간을 만들었더니 방도 아니고 거실 한복판인데도 세상 혼자 있는 느낌에 편안해진다.
나만을 위한 공간과 나만을 위한 시간
내가 나로 살기 위해 꼭 필요한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