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재택근무가 끝났다. 아빠와 함께 있어 좋았던 아이들에게 다시 조금 심심한 평일이 돌아왔다. 섭섭해하는 첫째의 표정에 남편은 재택근무 마지막 날을 장난감을 사러 가는 것으로 마무리했고 우리 집엔 인형의 집이 생겼다.
문득문득 생각나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있다. 아마도 큰 외삼촌과 함께 였던 거 같다. 외삼촌은 마트에서 나에게 아무거나 골라보라고 했고 나는 두 개의 인형의 집 중에서 고민했다. 하나는 여행가방 같은 모양으로 가방 안을 열면 바비인형의 조그만 방이 있었고 다른 하나는 커다란 전형적인 인형의 집이었다. 나는 커다란 게 갖고 싶었다. 그런데 비싼 걸 사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지 가방 모양의 집을 사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날 밤 혼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나는 그때 왜 그랬을까. 부모님이 사주신 것도 아니고 삼촌이 사주신다고 했는데. 심지어 아무거나 골라도 된다고 하셨는데 말이다. 어릴 때 기억이 거의 없는데 이날 펑펑 울던 내 모습은 종종 생각이 난다. 내가 나를 본 건 아니니 그때의 감정을 떠올리는 거지만 그렇다고 슬프거나 하진 않다. 그저 어릴 때부터 참 소심했다 싶다. 어쩌다 받는 장난감인데 갖고 싶은 거 사지.
첫째에게 장난감을 사줄 때면 이때의 기억이 스윽 떠오르고 나는 아이가 자기가 정말로 원하는 장난감을 고르기를 기대한다. 몇 번을 반복해서 "진짜 가지고 싶은 거 사도 괜찮아"라고 말해주기도 한다. 첫째는 나와는 다른 아이라서 당연하게 원하는 걸 고른다는 걸 알면서도 왜인지 모르게 꼭 아무거나 사도 괜찮다는 말을 하게 된다. 첫째가 내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며 장난감을 고르는 모습을 보는 게 정말 기쁘다. 생일이나 크리스마스날처럼 아이에게 선물을 주는 날에 내가 더 즐거워하는 게 이거 때문인 거 같다. 가끔 특별한 날 이 아니어도 작은 장난감을 사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도 나는 꼭 아이가 직접 고를 수 있게 한다. 휴대폰 화면으로 장난감을 신중하게 고르는 아이의 모습을 보는 것도 정말 신난다.
어린 시절 아쉬움 때문인지 인형은 그렇게 좋아하지 않으면서 인형의 집은 항상 갖고 싶었다. 그래서 당근으로 인형의 집을 나눔 한다는 글을 봤을 때 고민도 하지 않고 받아왔던 거 같다. 사실 첫째는 인형놀이보단 공룡놀이, 마법 놀이 같은 걸 더 좋아했는데 내가 그 큰 인형의 집을 가지고 온 날부터 인형놀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가끔 애들 재워놓고 멍하니 커다란 집을 볼 때면 기분이 좋았다. 한참 동안 재밌게 잘 놀긴 했지만 아무래도 낡고 삐걱거려서 말레이시아에 오면서 정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도 아쉬워했지만 나도 정말 섭섭했다. 말레이시아에 도착하면 꼭 사주겠다는 약속을 한건 아이에게 만이 아니라 나에게도 한 말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내가 어릴 때 갖고 싶어 했던 모양과 닮은 인형의 집이 생겼다. 물론 선택은 아이가 하도록 했다. 첫째가 직접 갈 수는 없어서 남편이 보내온 사진 중에 고르게 했다. 세 가지의 인형의 집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설명해 주었다고 생각하지만 내 어릴 적 기억 속 인형의 집과 닮은 걸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한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첫째는 내가 갖고 싶어 했던 것과 닮은 걸 골랐다. 아이들을 재우면서 남편이 인형 집을 조립하는 소리를 들었다. 아이가 좋아하겠지라는 설렘과 드디어 나한테도 번듯한 인형이 집이 생겼다는 생각이 동시에 든다. 내 것도 아닌데도 그렇다. 이제 아이와 인형놀이를 하는 게 더 재밌어질 거 같다.
어서 아침이 되어 첫째가 행복해하는 걸 보고 싶다. 그러면 나도 더 행복해지겠지.
첫째는 좋아서 한참을 저렇게 쳐다보다가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