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메와 도토리라는 책을 읽어준 날 교훈이 되는 좋은 말을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른이니까.
"뭐든지 포기하지 않으면 다 할 수 있어"
"그럼 엄마는 포기하지 않아?"
첫째의 질문은 엄마로서 좋은 말을 해줬다는 나의 뿌듯함을 당혹감으로 바꾸기 충분했다. 왜냐면 나는 뭐든 열심히 하긴 하지만 포기도 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포기하고 후회하지 않는 건 내가 생각하는 나의 장점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걸 아이에게 자랑할 수는 없을 거 같았다. 아니 자랑할 수 없었다.
"그럼 당연하지 엄마는 하려고 마음먹은 건 포기하지 않아!" 결국 이렇게 말해주고 말았다.
그래도 요즘 포기하지 않고 딱 하나 완성한 게 있다. 영어책을 한 권 외웠다. 김민식 작가님이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에서 추천해주신 '영어회화 100일의 기적'이라는 책을 정말 열심히 외웠다. 영어공부는 범위가 정해진 것도 방법이 정해진 것도 아니어서 매번 다양한 방법으로 공부를 했지만 정말 남는 게 없었다. 이번엔 작가님처럼 정말 눈 딱 감고 처음부터 끝까지 외웠다.
아이들이 잠들면 책을 외우고 부엌에서 밥 준비하면서 스크립트를 들었다. 하루 종일 아이들과 지내면서 남는 시간을 쪼개서 공부를 했다. 가끔은 내가 이걸 왜 이렇게 열심히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어쨌든 재밌었다. 매일매일 정해진 양을 외우려고 낑낑거리다 보면 하루가 금방 갔고 다 외우고 나면 뿌듯했다. 아이들과 지내는 건 즐겁기도 힘들기도 하지만 똑같은 하루들에 지루해진다. 그 지루함은 영어책 암기라는 구체적인 목표 덕분에 덜 느낄 수 있었다.
의미 단락별로 끊어서 외우기
작가님이 책에서 말하신 '의미 단락별로 끊어서 외우는 방법'으로 암기를 했다. 작가님은 의미 단락별로 끊어서 외우면 자연히 영어 어순대로 해석하는 '영어 순해'의 습관이 길러지며, 한 문장에 포함된 회화의 패턴 2~3개를 한꺼번에 외우는 셈이 된다고 하셨다. 이렇게 하기 위해 스크립트의 해석 옆에 단락별로 끊어서 다시 해석을 했고 그걸 보면서 암기를 했다. 책에 있는 모든 대화를 한글 해석만 보면 바로 영어로 말하게 되기까지 4개월이 걸렸다.
처음 1회를 암기했을 땐 아직 한글만 보고 모든 문장을 말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별 효과가 없었다. 2 회독을 하고 3 회독을 하면서 한글을 보며 정확히 영어로 말할 수 있게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 문득문득 책에 나온 문장이 들리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만화를 영어로 보여줄 때나 다른 영어 영상을 볼 때 책에 나온 문장이나 단어가 귀에 꽂이듣이 들리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그리고 알았다. 영어가 그냥 안 들리는 게 아니라 아는 게 별로 없어서 못 듣는 거라는 걸.
그리고 식당이나 가게에서 꼭 필요한 말은 할 수 있게 되었다. 첫째가 유치원을 가고 아침마다 둘째와 산책을 다니면서 다양한 가게를 가보고 있는데 단어의 나열이 아니라 문장으로 말을 할 수 있다. 식당에서 주문을 하고 "얼마나 기다려야 하나요"를 책에 나온 문장 그대로 말했을 때 "10분"이란 답변을 듣고 정말 즐거웠다. 아! 내 말을 정확히 알아들었구나!!
나는 뭔가를 물어보거나 요청하는 문장을 말하기가 정말로 어려웠는데 책 한 권을 암기하고 나니 일단 말을 시작을 할 순 있게 되었다. 책에서 나온 문장과 파파고만 있으면 가게에서 주문하고 받는 것 정도는 할 수 있게 된 거다.
드라마틱하게 영어를 잘하게 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말문은 튼 거 같다. 이제 과외 건 학원이건 다니면서 더 많이 공부를 하려고 한다. 아직 학원은 어려울 거 같고 과외를 찾아야 할 거 같다. 어떤 선생님을 만나게 될지 설레고 빨리 영어를 잘하고 싶어서 초조하기도 하다. 더 잘할 수 있겠지? 정말 영어로 마음껏 말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