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만큼 부모에게 필요한 곳이 있을까? 장난감과 세련된 놀이기구들로 가득 찬 키즈카페도 물론 좋지만 나는 놀이터가 제일 좋다. 가깝고 무료이며 아이의 동네 친구들이 있으니까.
놀이터가 재밌는 곳이라는 걸 나는 좀 늦게 알았다. 첫째를 낳고 복직하기 전까지 오피스텔에 살았어서 쉽게 갈 수 있는 놀이터가 없었다. 그 이후엔 아파트로 이사 왔지만 평일엔 일하느라 바빴고 주말에는 쇼핑몰, 공원처럼 어디든 갔다. 그러다 둘째를 낳고 휴직하면서 놀이터라는 공간이 눈에 확 들어왔다. 남편도 없는 평일 낮에 셋이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그렇다고 멀리 나가기엔 너무 어린 둘째까지 데리고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놀이터는 우리에게 최선의 선택이었다. 유모차 타고 나가면 둘째는 세상 구경하느라 얌전히 있었고 나는 그 틈에 첫째의 그네를 실컷 밀어줄 수 있었다. 뒤에서 몰래몰래 하는 휴대폰도 너무 좋았다. 그러다 첫째가 한 손으로 밀지 말고 두 손으로 밀라고 말하면 휴대폰을 주머니 속으로 쏙 넣어야 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만약 동네 친구라도 만나면 그날은 그저 행복한 날이었다. 친구가 있는데 먼저 집에 들어가야 한다고 하면 알겠다고 순순히 갈 아이가 몇이나 있겠는가. 친구 부모와 눈빛으로 이제 갈 때가 됐다는 신호를 주고받은 후 누구 하나 섭섭하지 않게 집으로 들어올 수도 있었다. 코로나로 놀이터마저 사용이 금지되었을 땐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슬펐고 아이들이 정말 안됐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놀 수 있는 자유가 제한되다니. 다행히 말레이시아로 올 때쯤 다시 놀이터를 사용할 수 있게 되어서 동네 친구와의 마지막 인사도 즐겁게 놀다가 할 수 있었다.
이곳에 도착한 후 제일 처음 확인한 것도 놀이터였다. 깨끗하고 안전하지만 크기가 작았다. 처음엔 이게 뭔가 싶어서 아쉬웠는데 알고 보니 우리 아이들처럼 어린 유아들은 놀이터서 놀고 초등학생 이상 큰 아이들은 2층의 넓은 공터에서 보드나 축구를 하며 놀았다. 큰 아이들과 겹치지 않으니 오히려 더 안전하게 놀 수 있다. 물론 큰 아이들도 조그만 아기들 신경 쓰지 않고 실컷 뛰어놀 수 있어서 좋다. 작아도 미끄럼틀, 그네, 시소 등이 알차게 들어가 있다. 누가 봐도 유아들 용이구나 싶게 작고 귀엽다. 특히 그네는 거의 바닥에 닿을 정도로 낮게 있어서 그네서 떨어져도 다칠 수가 없다. 첫째는 한국의 높이 올라가는 그네에 적응되어 있어서 별 재미를 못 느끼긴 하는데 한 번씩 타보고 둘째는 이것도 무서워한다. 시소도 이게 시소라는 사실을 나중에 깨달았다. 아이들이 살짝만 흔들어도 통통거리며 움직인다. 대신 크게 왔다 갔다 하지도 않는다. 다행히 미끄럼틀은 첫째도 좋아할 만큼은 크다. 덕분에 첫째가 미끄럼틀만 타려고 해서 그네 밀어주는 일은 없다. 이걸 다행이라고 하기엔 은근히 아쉽다.
그런데 여기 놀이터에서 제일 좋은 건 따로 있다. 바로 모래놀이장이 있다는 거다. 요즘 아이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초등학생 때까지 모래를 파서 모래성도 만들고 물도 부어가며 놀았었다. 그게 참 재밌었던 거 같은데 한국에선 흙이 있는 놀이터를 본 적이 없다. 요즘의 푹신한 바닥이 안전해서 더 좋은 건 알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그동안 들어가지 못하도록 칭칭 감겨있던 모래놀이장에 들어갈 수 있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아이들의 신발을 벗겨서 안에 넣어주었다. 첫째는 놀아본 적도 없으면서 매일 와서 놀아본 것 마냥 적극적이었고 둘째는 가만히 서있더니 이제는 안방처럼 돌아다닌다. 하얗고 고운 모래를 가지고 이렇게도 놀고 저렇게도 노는 모습을 보니 정말 좋다. 둘은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한참을 놀이터서 놀다가도 모래 한번 만지고 또 놀이터로 간다. 덕분에 집에 와서 해야 할 청소가 늘었지만 아이들이 즐겁다면 이쯤은 괜찮다. 아침에 두 시간을 이렇게 재밌게 놀고 점심까지 든든히 먹이면 그다음부턴 집에만 있어도 하루가 꽤 잘 간다. 텔레비전 한번 보여주고 간식 먹고 저녁 먹고 책까지 보고 나면 어느새 육퇴다.
더 재밌게 놀라고 꼭 모래놀이 장난감을 주문해야겠다. 첫째가 왜 맨날 잊어버리는지 궁금해하는데 애들 재우고 나면 인터넷 쇼핑할 시간도 없다. 할게 너무 많다. 그래도 꼭 오늘은 주문해야지.